골치 아픈 공인인증서 폐지 환영… 다양하고 편리한 인증방법 기대 100년 넘은 인감도장, 일제 흔적… 해외에선 보기 힘든 불편한 제도 인력-시간 낭비… 폐지해도 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그런데 공인인증서는 골치 아픈 존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우선 공인인증서를 컴퓨터에 설치하려면 매우 낯선 이름의 보안 및 해킹 방지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깔아야 한다. 그리고 영문, 숫자, 특수문자를 섞어 만들어야 하는 패스워드는 매번 쓸 때마다 가물거린다. 몇 번 틀리면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공인인증서에 짜증나는 이유는 사실 여러 가지인데, 이는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최근 젊은 직장인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 인터넷 모임은 편안한 삶을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개혁돼야 할 우리 사회의 규제가 무엇인지 인식을 조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우버’나 ‘타다’ 같은 운송서비스 관련 규제를 가장 큰 불편으로 꼽았으며, 공인인증서와 관련된 불편함이 두 번째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렇게 왈가왈부되던 공인인증서를 폐지하는 법안이 지난 20대 국회 마지막 날에 통과되었다. 3년 동안이나 국회에 머물러 있다가 겨우 처리된 셈이다.
겨우 20년 역사의 인터넷 인증제도가 이렇게 다양성을 지향하며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세계에서 본인 인증의 역할을 맡고 있는 인감증명제도는 어느 지점에 있을까? 조금이라도 중요한 상거래나 사회적 행위에서 인감증명서는 필수불가결의 첨부 서류다. 일제강점기에 자리 잡은 인감제도의 역사는 이미 100년이 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무슨 연유인지 개편 의견이나 불만도 별로 없는 듯싶다. 어쩌면 이제는 그 불편함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많은 거래를 할 때 등록된 인감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일인지 이제는 다시 검토할 때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한 해 400만 건 가까운 중고차 거래가 이뤄지는데, 여기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인감증명서다. 하지만 세계 거의 모든 국가는 이런 증명서 제도 없이도 중고차 거래를 아무 문제없이 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 많은 사람이 자동차 거래용 인감증명서를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를 발행하는 데 소요되는 공무원 인력과 시간도 불필요한 낭비다.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도장’은 오래된 문화지만 이는 국가 중요 문서에 사용하던 국새(國璽)나 임금의 옥새(玉璽) 그리고 회화나 서예 작품에 쓰이던 낙관(落款)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19세기 들어 일반 서민들도 개인 문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인감제도의 기초가 쌓였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서양을 모방하는 근대화를 추구하던 메이지 정부는 인감 폐기와 서명제도 도입을 시도했지만 당시 높은 문맹률 때문에 이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즉, 인감제도는 사람들 태반이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못 쓰던 구시대의 유물이다. 인감등록과 인감증명서 발급이 관청의 주요 업무가 된 것도 물론 메이지 시대다. 우리는 아쉽게도 이를 현재까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관청에서 인감증명서를 발급하는 나라는 일본과 그 나라의 오랜 식민지였던 대만, 그리고 대한민국뿐이다. 인감제도는 본격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는 인감이 아니어도 본인 인증 방법이 다양한 21세기를 살고 있다. 소중히 모시던 인감도장은 이제 각자의 기념품으로만 간직해도 전혀 문제없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