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1819∼1823년.
고야는 스페인의 수석 궁정화가로 부와 명성을 누렸지만 예술을 통해 그가 살던 시대를 신랄하게 풍자하곤 했다. 왕가의 초상을 그리는 일이 주 업무였지만 ‘옷 벗은 마하’처럼 권력을 쥔 후원자의 은밀한 요구에 부합하는 파격적인 누드화를 그리기도 했다. 40대 중반에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이후 죽음의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긴 고야는 인생 말년이 되자 깊은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게 된다. 1819년 그는 마드리드 교외의 농가를 사서 작업실로 꾸몄는데, 이전 집주인이 농아여서 ‘귀머거리의 집’이라 불리던 2층집이었다. 고야는 세상과 단절한 채 이 집에서 인생 마지막 역작을 완성했다. 집 안 벽면을 검게 칠한 후 4년 동안 벽화 14점을 그렸다. 눈도 거의 멀었고 청각은 완전히 상실한 70대의 노쇠한 몸이었지만 조수의 도움 없이 혼자서 벽면을 채웠다. 후원자의 요구대로 그려야 했던 작품들과 달리 이 벽화들은 고야의 내면과 작품세계를 온전히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작품이었다.
하나같이 어둡고 기괴한 광경의 이 그림들은 훗날 ‘검은 그림’이라 불렸다. 그중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뺏길까 봐 아들이 태어나는 대로 잡아먹은 사투르누스를 그린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고야는 로마 신화 속 사투르누스를 두 눈을 부릅뜨고 오로지 아이를 먹겠다는 일념에 찬 광인의 모습으로 그렸다. 당시 고야는 병마와 싸우며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고, 부패한 교회와 왕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권력을 위해 제 자식마저도 삼켜버리는 비정한 아버지를 통해 화가는 삶과 권력에 대한 환멸, 인간의 광기와 폭력성, 그리고 악의 본능을 고발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