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애니 ‘무녀도’로 佛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진출 안재훈 감독
안재훈 감독이 애니메이션 ‘무녀도’ 포스터가 뜬 모니터 앞에 앉았다.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마다 모든 관객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다. 한국인의 얼굴을 손에 익히는 공부이기도 하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작업실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액자가 보인다. ‘흙이 주는 생명보다야 못하겠지만 나의 경험과 헌신의 노력으로 그린 그림이 누군가에게 단초가 되기를.’ 16일 이곳에서 만난 안 감독은 이 액자 글귀처럼 한국인으로 살아온 53년의 경험과 그림체의 섬세함을 살리기 위해 장면 하나하나를 연필로 그려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었다.
1970∼1990년대 향수를 고루 담은 ‘소중한 날의 꿈’(2011년)에 이어 안 감독은 김동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무녀도’로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 영화제는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영화제로 15∼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제까지는 한국인의 보편적 생활상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무녀도는 무속신앙이라는 강렬한 소재를 다뤄요. 유럽도 수많은 종교 갈등의 역사를 지닌 만큼 무녀도의 서사를 생소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소설에 자주 묘사되는 모화의 굿판이나 푸닥거리 장면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안 감독은 국가무형문화재 무녀들을 만나 생김새부터 복장, 굿 소리는 물론이고 신령에 감응해 자신도 모르게 새나오는 흥얼거림까지 관찰했다. 지난해 별세한 국가무형문화재 김금화 만신을 비롯해 안 감독이 만난 무녀들의 얼굴에서 보이는 공통점을 참고해 모화의 얼굴을 그렸다.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살면서 인간문화재 무녀들을 만나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까요.”
작품에 한국을 담는 안 감독의 노력은 과거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살아오름’이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을 밥 먹듯 하는, 꿈도 희망도 없는 20대 여성이 실제로 죽음과 맞닥뜨리면서 생존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렸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