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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많은 노력 물거품 될 위기… 지금 상황에 화가 난다”

입력 | 2020-06-18 03:00:00

[남북관계 위기]대북 강경대응 돌아선 靑




文대통령, 김여정 담화에 “도 넘어… 나보다 국민 더 충격”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외교·안보 분야 원로들과의 오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화도 나고 좌절감도 느낀다”고 했다. 이날 오찬에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박지원 전 의원,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문 대통령부터 시계 방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 제공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말 폭탄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 박재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과의 오찬 자리에서다. 청와대가 이날 문 대통령을 향해 “역겹다” 등 비난을 퍼부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향해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 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면 대응에 나선 데는 이런 문 대통령의 판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군사적 충돌을 우려한 문 대통령은 “상황 악화를 방지해야 하지만 마땅한 대응 방법이 없다”면서도 “그래도 인내를 갖고 남북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 실망과 좌절감 표출한 文
문 대통령은 이날 2시간 동안 진행된 오찬에서 북한의 강경 대응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문 대통령은 “지금 상황에 화가 난다. 좌절스럽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실망’ ‘좌절감’ ‘인내’ 등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 가장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며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며 해온 그 많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김여정 등의 대남 비난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도를 넘었다”며 “나보다 국민이 더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북한이 사실상 준외교 공관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상황에서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답답함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 쪽이 대화의 상대인 북한도 좀 배려하면서 풀어 나갔어야 하는데 미국 관료들의 반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노딜로 간 게 아쉽다. 트럼프 대통령도 아쉽게 생각한다”고 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은 대북전단 문제에 대해 “막을 수 있었는데 미온적이었다”고 했다. 이어 “관련 법규가 있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는데 관련 부처가 관성에 젖어 대응을 제대로 못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도록 해야 한다”며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를 공개해도 되느냐’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그러시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인신공격 쏟아낸 김여정 vs 靑 “몰상식” 난타전
앞서 김여정은 이날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로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남북 대화를 재차 강조한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쏟아냈다.

김여정은 “새삼 혐오감을 금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며 “자기변명과 책임회피, 뿌리 깊은 사대주의로 점철된 남조선 당국자의 연설을 듣자니 저도 모르게 속이 메슥메슥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과거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던 ‘운전자론’이 무색해지는 변명” “마디마디에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매캐하게 묻어나오는 궤변” “정신이 잘못된 것 아닌가” 등 앞선 담화보다 한층 수위 높은 원색적 표현도 담겼다. 그러면서 “마이크 앞에만 나서면 마치 어린애같이 천진하고 희망에 부푼 꿈같은 소리만 토사하고 온갖 잘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가니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까워 우리 인민들에게도 좀 알리자고 내가 오늘 또 말 폭탄을 터뜨리게 된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북측의 이러한 사리 분별 못 하는 언행을 우리로서는 더 이상 감내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남북이 거친 언사를 경쟁하듯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다. 윤 수석의 발표문은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끝난 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과 조율하고 문 대통령이 최종 재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과 통일부도 일제히 가세했다. 전동진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은 “북측은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북측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강 대 강’의 대치 국면을 각오하고 강경 대응으로 돌아선 것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군이 이틀 연속 강력한 대응을 천명한 것도 북한이 국지 도발 등에 나설 경우 즉각 군사적인 맞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효목 tree624@donga.com·신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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