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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한미 워킹그룹이 상전” 비난 속 한미 수석대표 협의 주목

입력 | 2020-06-18 17:29:00

이도훈 17일 방미…한본도 상황 공유, 대응 조율
한미워킹그룹, 남북 협력 사업 걸림돌 지적 잇따라
김여정 "북남 합의 미이행, 친미사대 올가미 때문"
정동영 前통일부 장관 "사실상 美 결재 받는 구조"
北 무력 도발 가능성 커지며 한미 물밑 협의 필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서 한미가 극비리에 외교 채널을 가동했다.

북한이 ‘한미 워킹그룹’을 ‘상전(上典)’이라며 남북 합의 미이행의 원인을 미국에 돌린 데다 정치권에서도 한미 워킹그룹 중지론까지 제기하며 밀착하는 모습이 조심스러운 상황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선 한반도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한미간 물밑 협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양국 당국 간 논의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댈러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 본부장의 방미는 지난 1월 이후 5개월 만으로 비공개로 추진됐다. 외교부는 18일 이 본부장이 미국에 도착한 후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한미 수석대표 협의를 갖고, 한반도 상황 관련 평가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본부장이 방미길에 오른 것은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50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사 행동을 예고한 다음 날이다. 한미는 그간 정세 악화 방지에 역점을 두고 미국, 중국 등과 평가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각급에서 대응 방안을 긴밀히 조율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화 또는 화상회의를 통해 논의해 왔지만 최근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고 판단한 만큼 대면 협의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 정부 역시 최근 북한 상항과 관련해 “우리의 동맹과 긴밀한 조율을 계속하고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신 미 국무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서는 “북한이 추가로 역효과를 내는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며 “미국은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만남과 관련해 외교부는 ‘수석대표 협의’라고 규정했다. 사실상 한미 워킹그룹이 수석대표를 주축으로 하는 한반도 관련 사항 전반을 논의하는 소통 채널의 하나라는 점에서 한미 워킹그룹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이 남북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책임을 미국이 제안한 ‘한미 워킹그룹’ 때문이라고 비판한 데다 정치권에서도 한미 위킹그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한미가 밀착하는 모습이 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부담이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지난 17일 담화를 통해 남북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원인으로 ‘한미 워킹그룹’을 받아들인 남측에 돌렸다. 김 제1부부장은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상전이 강박하는 ‘한미 실무그룹’이라는 것을 덥석 받아물고 사사건건 모든 문제를 백악관에 섬겨바쳐 온 것이 오늘의 참혹한 후과로 되돌아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 제1부부장은 “지난 2년간 남조선당국은 ‘제재 틀 안에서’라는 전제 조건을 절대적으로 붙여 왔다”며 “북남 관계가 미국의 농락물로 전락한 것은 고질적인 친미사대와 굴종주의가 낳은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리선권 북한 외무상은 지난 12일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2주년을 맞아 “변함 없는 전략적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적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고,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도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것이 좋다”고 맹비난했다.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 협력과 관련한 제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채널로 2018년 11월 만들어졌다. 한국에선 이도훈 본부장을 비롯해 통일부, 청와대 등이 참여하고, 미국 측에서는 국무부, 재무부, 백악관 NSC 관계자 등이 참석한다. 타미플루의 인도적 지원 문제,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 문제도 대북 제재 접촉 우려를 이유로 논의됐다.

그간 북한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 협력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외교부는 지난해 5월 이후 한미 워킹그룹이라는 명칭을 거론하지 않은 채 한미 실무 협의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한미 워킹그룹이라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면서 예를 들면 UN의 대북제재위원회에서조차 허용된 것도 한미 워킹그룹이 와서 막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과의 문제는 대화로 풀 수밖에 없고,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동시에 평행 발전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다”며 “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예를 들면 한미 워킹그룹의 중지 등 구체적인 실천이라도 하나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역시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한미 워킹그룹을 덥석 받은 것이 패착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과 마주앉아서 사실상 결재를 받는 구조가 됐다. 미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는 틀 속에서 남북관계가 제약이 됐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갈수록 고조되는 무력 도발 위험 등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선 한미간 물밑 협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우선 미국에 특사를 보내 남북 합의 이행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이 본부장이 사실상 대미 특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오래전 예정된 일정”이라며 “특사로 간 게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6일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워킹그룹과 관련해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런 채널들을 적극적으로 해서 통일부와 협조하면서 가급적이면 돌파구를 열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 면제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절차가 열쇠를 갖고 있고, 미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워킹그룹의 매커니즘을 활용했다”며 “워킹그룹이 본연의 역할에 맞게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