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기획자 주석찬, ‘소공녀 프로젝트’ 리더 반설희, 프로듀서 한동희, 문화연구자 규이.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아이돌 그룹인데 TV에선 못 보고 서울 마포구 라이브 클럽에 가야 볼 수 있다. 큰 방송국, 대형 경기장, 수십만 관중과는 거리가 멀다. 활동 방식, 규모, 영역이 인디 록 밴드와 흡사하다. 이른바 한국형 ‘지하 아이돌’이다.
일본의 독특한 서브컬처로 인식되던 지하 아이돌이 한국에서도 싹트고 있다. 일본문화를 동경하거나 흉내 내던 수준에서 벗어나 최근 한국어 자작곡도 잇따라 제작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 21일에만도 지하 아이돌 공연과 행사가 신촌긱라이브하우스 등 마포 일대에서 열린다. 작지만 새로운 음악계가 우리 곁에서 개화하고 있다.
소공녀 프로젝트의 리더 반설희 씨(20)는 케이팝 아이돌 출신이다. 반 씨는 “케이팝에서 아이돌은 예쁘고 멋지고 특별한 아이들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고, ‘7년 계약’같이 소속사 시스템에 묶여 한 번뿐인 청춘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구조이기도 하다”면서 “지하 아이돌은 원하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꿈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소공녀 프로젝트를 만들고 직접 작사 작곡 편곡한 ‘나비춤’(3월), ‘잠깐만요 신데렐라’(4월)로 데뷔했다.
팬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분위기도 지하 아이돌의 특징이다. 지난해 결성한 네키루의 멤버 냐류(예명·20)는 “케이팝 아이돌은 음악방송에 나와 정해진 안무와 노래만 하지만 지하 아이돌은 팬들과 즉흥적으로 교감하면서 현장의 재미를 추구한다”고 했다.
지하 아이돌은 인디 밴드와 상생하는 구조다. 20일 마포구 프리즘홀에서 열리는 ‘레지스탕스! 메탈 vs 아이돌’ 공연에는 지하 아이돌과 메탈, 각 3개 팀이 함께 출연한다. 네키루의 프로듀서 겸 작사가인, 록 밴드 ‘보이드’의 한동희 씨(32)는 “좋아하는 일본 록 밴드가 해체 뒤 지하 아이돌 프로듀스에 나서는 것을 보며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은 일본 쪽에서 먼저 한국어 작사 요청이 올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신촌긱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한국 지하 아이돌 공연(위 사진)과 올해 데뷔한 한국 지하 아이돌 ‘소공녀 프로젝트’. 토와매니지먼트 제공
지하 아이돌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최근 1년간 도쿄의 지하 아이돌 현장을 취재한 문화연구가 규이(예명·29)는 “성 착취적 요소, 신변 위험 문제 등 어두운 부분도 현지에서 지적받는다. 한국형 지하 아이돌도 향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조언했다.
도쿄에 사는 이진석 일본문화평론가(‘오타쿠 진화론’ 저자)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한 한국적 모델을 개발해 보는 것도 좋겠다”면서 “지하 아이돌을 통해 라이브 클럽이 다시 활성화되면 인디 밴드도 숨통이 트이므로 대안 음악계의 상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