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이 쓴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이 미국 정가를 뒤흔들고 있다. 어제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낚여(hooked)’ 회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볼턴은 또 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브루클린 다리를 판 것’이라고 비판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었다’는 뜻의 미국 표현이다. 미북 비핵화 외교에 대해선 ‘한국의 창조물’이란 말로 정상회담을 주선한 문재인 정부에 불편한 심정을 내비쳤다.
▷볼턴은 미국 외교계의 대표적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 발탁됐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 국무부 차관, 유엔 주재 미 대사로 북핵 문제를 다뤘다. 2002년 이라크 이란 북한 3개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제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그가 작년 하노이 회담에서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의 ‘리비아 모델’을 꺼내들자 당황한 북한은 협상을 결렬시켰다.
▷미국 언론이 경쟁적으로 책 내용을 보도하면서도 “자기비판이 결여돼 있다”고 꼬집는 건 오만에 가까운 볼턴의 캐릭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동맹국 관계, 인종차별 문제 등에서 안팎의 신뢰를 잃어가는 지금 볼턴의 폭로 쪽에 더 믿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연일 막말, 도발을 이어가다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라”고까지 뻔뻔스레 떠드는 북측 태도를 보면 그들이 절대 핵을 포기할 리 없다는 볼턴의 지론이 선견지명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