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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재난지원금으로 돈 불릴 기회”

입력 | 2020-06-20 03:00:00

美 실물경제 부진한데… 나스닥 ‘나 홀로 질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고용, 산업생산 등 미국 실물경제의 부진이 뚜렷하다. 하지만 뉴욕증시에서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가 ‘나 홀로 질주’를 하고 있다. 제조업 위주의 다우존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지수는 횡보를 거듭하고 있어 ‘나스닥이 1990년대 닷컴 버블과 비슷한 과열에 빠진 것 아니냐’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10일 사상 최초로 종가 기준 10,000 선을 돌파한 나스닥의 현 주소와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 닷컴 버블과 최근 2차례 단기 급등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 원리버티플라자에 위치한 나스닥(NASDAQ·National Association of Securities Dealers Automated Quotations)은 1971년 2월 설립됐다. 세계 각국의 3600여 개 기업이 등록됐으며 17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200조 원)가 넘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소위 ‘빅3’ 기업이 모두 포진해 있다.

세계 최대 기업인 애플의 17일 시총은 1조5240억 달러(약 1829조 원)에 달한다. MS와 아마존의 시총도 각각 1조4730억 달러, 1조3170억 달러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이달 한때 1조 달러를 돌파했지만 최근 상승세가 주춤해져 1조 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이렇듯 현재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나스닥은 개장 24년이 흐른 1995년 7월에야 지수 1,000을 돌파했을 정도로 초기 성장 속도가 더뎠다. 이후 ‘신(新)경제’로 불렸던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경제 호황을 바탕으로 질주를 거듭했다. 정보기술(IT)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평가받는 2000년 전후에는 1999년 12월 29일 지수 4,000을 찍은 지 약 2개월 반 만인 2000년 3월 9일 5,000을 넘었을 정도로 상승세가 가팔랐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횡보 상태에 빠졌던 나스닥은 지난해 12월 26일 9,000을 돌파했다. 이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이달 10일 10,000 선을 찍었다. 지수 1000포인트의 상승 기간이 닷컴 버블 때에 이어 두 번째로 짧다.

최근 나스닥 상승 역시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혹은 ‘MAGA’(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로 불리는 대형 IT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 등의 확산으로 IT 플랫폼 기업이 각광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 ‘로빈후드’가 상승 주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각각 제로(0) 금리 정책, 2조8000억 달러의 유동성 공급 등 대대적인 부양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막힌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올인’하면서 나스닥 급등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가에서는 이런 개미투자자들을 ‘로빈후드’로 부른다. 2013년 스탠퍼드대 동문이자 각각 불가리아, 인도 이민자인 블라디미르 테네브(33)와 바이주 바트(35)가 설립한 온라인 주식 거래 플랫폼이자 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투자자를 일컫는다.

로빈후드는 거래 수수료가 전혀 없고 직관적인 앱 디자인을 택해 특히 젊은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CNBC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에만 300만 개가 넘는 로빈후드 신규 계좌가 개설됐다. 이에 따라 전체 이용자도 1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용자 중위 연령은 31세에 불과하며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투자 성향을 띤다.

일부는 전문성과 투자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재야 전문가를 지나치게 신봉하는 ‘팬덤’ 현상을 보인다. ‘개미투자자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데이브 포트노이(43)가 대표적이다. 그가 트위터에 올리는 ‘데이비(데이브의 애칭)의 일일 국제거래’ 영상을 추종하는 투자자만 150만 명을 넘는다. 포트노이는 10일 트위터에 코로나19 국면에서 저조한 성과를 낸 전설적 투자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90)을 비꼬며 “버핏은 한물갔다. 내가 대장”이라고 주장했다. 버핏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미 항공주와 금융주 등을 대량 매도했으나 최근 이들 업종의 주가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실적 뒷받침” vs “폭탄 돌리기”
1990년대 중반부터 2001년 9·11테러 직전까지 이어진 닷컴 버블 시기에는 코즈모닷컴(온라인 식료잡화품 배달업체), 페츠닷컴(애완용품 온라인 판매 사이트), 부닷컴(온라인 의류판매업체), 웹반(온라인 식품업체)처럼 회사명에 ‘닷컴’이나 ‘웹’이 들어가는 벤처기업이 큰 인기를 끌었다. 실적과 관계없이 회사명에 ‘닷컴’만 들어가도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하고 증시에 상장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당시 연준 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표현까지 쓰며 증시 과열을 우려했던 이유다.

현재 나스닥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5일 뉴욕타임스(NYT)에 “다단계 ‘폰지 사기’ 같은 폭탄 돌리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초기 투자자가 일정 수익을 내고, 이를 본 다른 투자자가 달려들어 주가를 올리는 과정이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거품이 터지면서 모두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피터 세니치 캔터피츠제럴드 수석전략가 역시 링크트인에 “포트노이 같은 이가 활개 치는 현 시장은 극단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닷컴 붕괴를 예언했던 앨버트 에드워즈 소시에테제네랄 이사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당시와 유사하다. 투자자들이 연준이 깔아준 안전판 위에서 ‘묻지 마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는 저버 씨(29)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재난지원금으로 들어온 돈을 불릴 수 있는 기회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라고 했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미 경제가 코로나19란 돌발 변수를 맞이했지만 설비 과잉, 부채 불균형, 자산가격 거품 등이 나타나지 않았다며 “6개월 후 미국 경제 회복을 전망한다면 지금 주식을 사야 한다. 닷컴 거품 때보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원도 “닷컴 거품 때와 달리 지금 각광받는 기업들은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고 있다”고 가세했다.

유재동 jarrett@donga.com·김예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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