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훈련 불만 표시…상의 없이 훈련 축소 동의" "하노이서 밤새 코언 의회 청문회 지켜보며 짜증"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아이디어…공과 사 구분 못 해" "볼턴, 트럼프에 더 나은 정책 제시했는지는 불분명"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연일 새롭게 미 정가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지난 2018년 ‘제재 완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추가 내용도 등장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이런 서술이 담긴 볼턴 전 보좌관 저서 ‘그 일이 벌어진 방: 백악관 회고록(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 내용을 공개했다.
◇트럼프, 싱가포르서 ‘제재 해제’ 가능성 제시
테리 연구원이 전한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질문에 ‘열려 있으며 이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한다’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김 위원장이 낙관적 기대감을 안고 회담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회담 자리에서 한미연합훈련이 비싸고 도발적이라며 반복적으로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연합훈련을 ‘달러 낭비’로 봤다는 것이다. 이후 김 위원장이 훈련 축소 또는 종료를 원한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장군들을 무시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상의 없이 훈련 축소 동의…한반도 병력 주둔에도 불만
테리 연구원은 자신이 본 회고록 내용을 토대로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전 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중 누구와도 이 문제에 관한 상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이 전쟁 놀음(war games)은 말할 것도 없고, 왜 우리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는지, 왜 아직도 한반도에 그렇게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고도 서술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에 대한 찬사도 오갔다. 김 위원장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취지로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그 질문이 마음에 든다며 “매우 영리하고, 꽤 비밀스러우며, 매우 좋은 사람이고, 완전히 진실하고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테리 연구원은 이런 내용을 전하며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북한에) 지나친 기대를 불러일으켰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하노이 ‘노딜’ 결과 대비…스몰딜은 거부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레버리지는 내가 가졌다’, ‘나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나는 떠날 수 있다’를 핵심 포인트로 삼았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담을 방해하고자 했기 때문에, 역시 “떠나도 괜찮다”라고 이해시켰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사전에 ‘빅딜’과 ‘스몰딜’, ‘걸어 나가기’ 등 세 가지 결과를 예상했으며, 극적이지 않고 제재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스몰딜’은 거부했다고 한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장을) 걸어 나가기’라는 선택지가 남아 있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비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여자가 당신을 차기 전에 당신이 여자를 차라(ditch the girl before she ditches you)”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학에 따라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하노이서 美의회에 신경 쏟아…밤새워 지켜보며 짜증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실제 회담이 열린 하노이에선 자신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를 지켜보며 밤을 새웠다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짜증을 내며 “스몰딜과 (회담장) 걸어 나가기 중 어느 게 더 큰 이야기인가”라고 물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걸어 나가기’가 더 극적이라고 판단, 이를 택했다는 게 회고록을 본 테리 연구원의 전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이를 통해 다른 협상에 있어 더 큰 레버리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하노이에서 북미는 일종의 합의에 근접하긴 했지만, 김 위원장은 영변 외 사항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추가로 무언가를 제시하라고 요청했지만, 김 위원장이 거절했다는 게 회고록 내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장에서 걸어 나가는 쪽을 택했다는 것이다.
◇판문점 회동은 트럼프 아이디어…‘언론용 행사’
남북미 지도자가 모두 모였던 ‘판문점 회동’에 대한 이야기도 회고록에 담겼다. 테리 연구원이 공개한 회고록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은 순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이 이를 본다면 비무장지대(DMZ)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그러나 볼턴 전 보좌관과 믹 멀베이니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은 이에 매우 놀랐으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를 ‘완전한 혼란’으로 봤다고 한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위터가 정상회담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에 메스꺼움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회동은 실질적인 의제가 없는 ‘언론 보도용’이었다고 회고록에서 회상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는 “개인적 이익과 국가의 이익 사이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아무것도 달성 못 한 북미회담 자랑”
테리 연구원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판문점 회동을 절실히 원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당시 회동을 요구했다고 거짓말했으며, 그가 자신을 매우 만나길 원했다고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이에 대해 “모든 게 말이 안 된다. 누가 만남을 간절히 원했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트럼프)이다”라고 서술했다고 한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DMZ 회동에서 별다른 성과가 없었음에도 “세계가 그 회동에 미쳐 있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주요20개국(G20)을 대체했다”라며 만족을 표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시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 달성한 게 없는 북미 회담을 ‘엄청난 성과’라고 떠벌렸다. 볼턴 전 보좌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제시해온 ‘위대하고 아름다운 비전’을 거론, “그게 우리의 대북 정책이었다”라고 비꼰다.
다만 테리 연구원은 이런 저서 내용을 전하며 “연이은 4차례 정권에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핵확산 위협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볼턴 전 보좌관의 결론에 반박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다만 “볼턴 전 보좌관이 더 나은 정책 제안을 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볼턴 전 보좌관은 한때 북한에 대해 선제타격론을 주장했던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 매파였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