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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에 생산량 보고하던 용광로와 화살에 뚫린 차 강판[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입력 | 2020-06-20 16:00:00


소소하게 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이 여러분들의 성원 속에 네 번째 주제까지 잘 연재됐습니다. 오늘은 자동차를 만드는 핵심 소재인 철강에 대한 얘기를 좀 풀어볼까 합니다. 최근 제가 다녀온 ‘민족고로’ 포항1고로 이야기와 함께입니다. 이야기의 비중을 놓고 굳이 따져보자면 ‘휴일차(車)담’과 ‘휴일철(鐵)담’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할 듯도 합니다.

‘휴일차담’이라는 제목을 같이 붙이지만 연재물 형태로 소개, 접근되는 기사는 아니기 때문에 자동차 얘기를 기다리고 있는 독자분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철강업계에서도 자동차 시장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현대자동차 팰리세이드의 뒷문이 화살에 뚫린 위험천만했던 일을 철강업계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등의 자동차 관련 얘기를 작지 않은 비중으로 같이 풀어보겠습니다.

현대자동차의 모터스포츠 도전에 대해 다룬 휴일차담 네 번째 편에 큰 호응을 보내주신 독자분들께도 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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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산업의 최후방 ‘철강업’
기자들은 종종 전방산업, 후방산업이라는 말을 기사에 쓰는데요. 일반 소비자에게 가까운 쪽이 전방, 먼 쪽이 후방입니다.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자동차가 전방이라면 자동차용 부품과 모듈은 후방이 되는 셈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많은 산업군에서 가장 후방산업 중 하나인 곳이 바로 ‘철강업’입니다. 자동차를 만드는데도 철강재가 필요하고 건물을 짓는데도 철강재가 필요합니다. 철강재 생산 이전 단계를 생각해보면 철광석을 채굴하는 단계 정도뿐이니 여러 모로 봐도 상당히 후방산업인 셈입니다.

포스코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국내에서는 이 철강업의 맏형이라고 할만한 기업이 바로 포스코입니다. 포항제철, 포철 등으로 불렸던 기업이지요. 이 포스코의 양대 사업장은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최근에 포항제철소를 다녀왔습니다.

제철소하면 많은 분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포항제철소는 한국 최초의 일관 종합제철소입니다. 다양한 철강제품을 만드는 제철소는 포항제철소 이전에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소형 용광로도 없지 않았습니다.

1973년 6월 9일 첫 쇳물 생산 이후 만세를 외치는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임직원들. 포스코 제공



하지만 1973년 6월 9일에 포항제철소의 제1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한 일은 한국 철강업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철광석을 녹여서 쇳물을 만드는 ‘고로’ 조업을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던 한국은 이 고로를 통해 우리 손으로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재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 한 대에 쇠 1톤 쓰는 자동차는 철강업 최대 고객
첫 쇳물이 나온 지 꼭 47년 만인 지난 6월 9일에 이 포항 1고로를 다녀온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산업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또 한국 산업의 뿌리를 다시금 조명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코로나19 확산은 많은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에 큰 위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도 경제 활동과 이동, 소비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소득이 감소하고 결국 산업생산이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타격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모이는 곳 중 하나가 제철소입니다. 자동차, 가전, 조선, 건설, 전자 등등. 철강재를 사용하는 모든 산업군의 위축이 결국 제철소의 철강재 판매에 타격을 입힙니다.

그리고 타격이 가장 큰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 관련 시장입니다. 자동차 강판은 판매 비중이 클 뿐더러 가격도 비교적 높게 받을 수 있는 제품입니다.

철강업계에서는 통상 자동차 1대에 철강재 1톤(t)이 들어가는 것으로 셈을 합니다.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는 대략 400만 대 안팎의 차량을 생산했습니다. 전 세계로 보면 매년 9000만 대 안팎의 자동차를 생산합니다. 1억 톤 가까운 자동차 강판 소비는 18억 톤을 넘나드는 글로벌 철강 생산량으로 봐도 비중이 결코 작지 않습니다.


자동차 곳곳에 쓰이는 철강재의 모습. 포스코 제공



국내에서 봐도 연간 400만t의 철강재 수요가 자동차에서 발생한다는 것인데 포스코의 경우 해외에도 자동차 강판을 많이 수출합니다. 연 3500만 톤 가량의 철강재를 생산하는 포스코는 1000만 톤에 조금 못 미치는 자동차 강판을 생산합니다. 이모저모로 봐도 비중이 큰 셈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완성차 공장을 상당기간 멈췄다가 다시 가동하고 있고 그나마도 수요가 급감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제품군 가운데 ‘고부가가치’로 꼽히던 자동차 강판의 판매 감소가 지금 한국의 철강업계에는 가장 큰 도전입니다.


● 매일 청와대에 생산량 보고하던 포항1고로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9일 찾은 포항1고로에서는 어김없이 뜨거운 쇳물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높이 84m, 내부 용적 1660m³의 고로에 철광석과 유연탄 덩어리를 밀어 넣고 섭씨 1000도의 열풍을 불어넣으면 내부 온도가 1500도까지 올라가면서 철광석이 쇳물로 녹아 나옵니다.

1고로는 처음으로 불을 집어넣은 1973년 이후 반세기 동안 생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93년 2월 고로를 고쳐 짓는 개수 공사 시점을 기준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최장 기간 조업 중인 고로입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5000만 톤에 가까운 쇳물이 이 1고로에서 생산됐습니다.

사진 5 -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의 외관. 포스코 제공



자동차와 조선업을 비롯한 한국 제조업의 성장과 역사를 같이 해 왔다고 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생산 시설이 철강업은 물론 한국 산업 모두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으로 쇳물을 뽑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소감은 좀 남달랐습니다.

현장에서 들은 일화도 있습니다. 1973년 첫 쇳물을 뽑아냈던 1고로는 당시 매일 생산량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쇠가 없으면 다리와 건물을 만들 수도 없고 자동차·선박·가전 제조도 불가능합니다. 한국 산업화의 최후방에서 가장 기초 소재인 철강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만큼 의미가 컸던 셈입니다.


● 철강 경쟁력은 세계 최고, 한 차종에도 다양한 철강사 제품 사용
1고로에서는 평소 하루 3000t가량의 쇳물을 생산합니다. 포스코는 포항·광양에 모두 9기의 고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공사 중인 1기를 제외하고 현재 가동 중인 8기의 고로에서 만들어지는 쇳물은 다양한 철강재 생산의 출발점입니다.

포스코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이 쇳물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선철’을 ‘강철’로 만들고 액체 상체의 강철을 고체 상태로 만든 다음에 고온·고압으로 점점 얇게 펴내는 과정을 거쳐서 철강재가 만들어집니다. 자동차 강판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고 추가적으로 아연 도금 공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한국 철강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힙니다. 포스코는 10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업체 1위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를 외친 바 있는 현대자동차그룹도 현대제철의 고로 3기에서 쇳물을 뽑아내 자동차 강판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동차 강판은 통상 한 차종에도 여러 회사의 제품이 들어갑니다. 앞문 강판은 포스코, 루프쪽 강판은 현대제철 이런 식으로 여러 회사의 제품이 섞이는 것인데요. 그래도 한 차종의 앞문, 뒷문 같은 각 파트는 한 회사의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 화살에 뚫린 강판? “안전·구조용 철강재는 내부에”
그렇게 철강업 경쟁력이 뛰어난데 최근 현대자동차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의 뒷문은 왜 화살에 뚫렸느냐, 는 질문도 있을 법합니다. 해당 부위에 어떤 국가의 어느 기업이 생산한 철강재가 쓰였는지는 알기가 어렵습니다만… 아무튼 다행스럽게 인명 피해가 없었던 이 사고에 대해 철강업계에서는 “화살을 막을 수 있는 승용차 외부 강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원거리에서 날아온 화살에 관통된 차량 뒷문의 모습. 독자 제공



사진으로 알려진 것처럼 120m 거리에서 날아온 화살이 해당 차량의 뒷문을 관통했는데요. 잘 도색해서 차량 외부를 감싸는 강판들은 두께가 모두 1mm 미만이고 비교적 부드러운 철강재가 쓰인다고 합니다. 강도가 뛰어나기보다는 매끄럽게 제작돼 고객들이 눈으로 보기에 좋아야 하고(심미성) 다양한 디자인을 반영할 수 있도록 성형성도 좋아야 하는 강판이라는 것입니다.

운전자와 탑승객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진짜 철강재는 차량 내부 보이지 않는 곳에 많이 숨어 있습니다. 포스코가 내세우는 초고장력강판, 이른바 ‘기가스틸’ 등입니다. 차량의 구조 설계에 이런 강판들이 반영되고 충돌 등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출시를 앞둔 현대자동차 싼타페의 외관. 차량 외부의 강판은 비교적 부드러운 철강재를 사용한다. 현대자동차 제공



그래서 철강업계에서는 화살이 외부의 강판을 뚫었더라도 내부에서 구조재 역할을 하는 철강재와 맞닥뜨렸다면 관통하지 못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관통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차량은 화살 같은 대단히 이례적인 위험보다는 다른 차량과의 충돌 등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설계되기 때문에 강도 높은 구조재를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면 된다는 것이죠.

자동차를 대형 빌딩으로 보자면 건물의 구조적 안전을 지키는 H빔 같은 철골 구조물은 차량 내부에 자리 잡고 있고 외부의 강판은 커튼월을 구성하며 외부와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유리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이나 탄소섬유소재 등도 활용되지만 자동차에서는 여전히 철강재 사용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위기를 넘어서는 것은 사람의 힘
자동차의 기초 소재인 철강재를 간단하게 소개해 본 오늘의 휴일차담은 포항 1고로에서 들은 이야기로 끝을 맺어볼까 합니다.



1993년 2월부터 3대기 조업을 시작한 1고로는 이 때를 기준으로는 28년째 조업하고 있습니다. 고로의 일반적인 설계 수명이 15년인 점을 감안하면 무려 2배 가까운 시간 동안 생산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온·고압에서 24시간 조업이 이어지는 설비가 이처럼 오랫동안 조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양한 노력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1고로의 역사. 포스코 제공



사실 1고로는 포스코의 고로 9기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습니다. 설비가 클수록 효율적이라는 점, 1고로가 설계수명을 넘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 불을 꺼도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 1고로가 늘 마주하는 ‘위기’입니다. 현장에서는 이런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 바로 자신들의 경쟁력이었다는 얘기합니다.

기본적인 경쟁력이 떨어지기에 2018년 다른 고로에서는 쓰지 않는 저품질 원료를 이용한 쇳물 생산을 시도해 성공시키면서 포스코의 고로 가운데 가장 높은 원가경쟁력을 기록한 바 있다는 것입니다.

또 설계수명인 15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 동안 고온·고압을 견디느라 내부의 내화벽돌이 교체 시점 직전까지 얇아진 문제는 최대한 고로 중심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기술과 쇠로 된 외피를 물로 직접 냉각시키는 기술로 극복해 왔다고 합니다.

포스코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코로나19로 산업계 전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의 힘밖에 없지 않나하는 것이 현장에서 내린 제 막연한 결론이었습니다.

쉽사리 극복되지 않는 사태에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철강, 자동차 그리고 다른 산업들이 모두 내부의 힘을 모아서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그 경험을 미래 경쟁력으로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의 현장 근로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에서도 최근 “품질 확보로 위기를 돌파하자”는 목소리를 점점 키우고 있습니다. 위기일수록 산업별로, 기업별로 임직원들끼리 똘똘 뭉치는 노력이 먼 미래를 생각하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자동차 얘기가 아니라 조금 무거운 산업계 얘기가 많이 들어간 다섯 번째 휴일차담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훨씬 더 흥미로운 자동차 얘기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