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비(정지훈)가 2017년 발표한 노래 ‘깡’의 유튜브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이다. 휴대전화를 가로로 뉘여 전체 화면으로 뮤직비디오만 감상했을 땐 별로 재미없지만 세로로 세워 댓글과 함께 보면 재미가 배가된다는 뜻이다. 2개월 전 달린 이 한 줄의 문장에 1만7000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했다. ‘깡’이 발매 2년 반이 지나서야 댓글의 힘으로 인기를 끌게 된 기이한 현상을 명쾌하게 함축해냈기 때문이다. ‘1일1깡’(하루에 한 번 ‘깡’ 노래를 듣거나 춤을 보는 것), ‘꼬만춤’(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듯 보이는 춤) 등 숱한 유행어까지 나오며 비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준 ‘깡 열풍’의 중심에는 비극적 콘텐츠를 희극으로 둔갑시키는 댓글이 있다.
‘깡’처럼 재미있고 기발한 댓글을 양산해내는 콘텐츠를 최근 ‘댓글맛집’이라고 부른다. 댓글맛집은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드라마, 예능, 인터뷰, 음악방송 영상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박가현 씨(30·여)는 “요즘 ‘1일3깡’을 하는데 가로로 영상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떤 댓글이 새로 올라왔을까 궁금해 영상을 찾는다”고 말했다.
기존에는 웃긴 화면을 캡처하거나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만 모아 제공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재미있는 댓글을 모아 보여주는 ‘댓글 큐레이션’ 채널이 대세다. 유튜브, 인스타그램에 ‘댓글맛집’을 검색하면 영상의 ‘베스트 댓글’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채널이 여럿 나온다. 올해 1월 개설된 인스타그램 ‘legend_vh’는 댓글 콘텐츠를 올리면서 구독자 수가 한 달 만에 2만여 명이 늘었다. 채널 운영자는 “비의 ‘깡’ 이후 ‘병맛 댓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이다. ‘고전 짤’은 이미 많이 소비돼 짤 자체만으로는 식상함을 느끼기 때문이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데 익숙한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를 중심으로 댓글이 ‘놀이화’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에게 댓글은 놀이 수단이다. 깡에 댓글을 다는 것도 비를 희화화하거나 비방하려는 목적보다는 자신만의 유머 코드를 공유함으로써 콘텐츠 소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놀이’ 성격이 강하다. 그 과정에서 원래 콘텐츠의 재미보다 변형된 즐거움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legend_vh’ 운영자는 “영상 속 인물만을 주인공으로 상정하고 콘텐츠를 소극적으로 소비하던 시대는 갔다. 재미있는 댓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도 반응하면서 ‘나’ 중심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도 콘텐츠를 언제든 감상할 수 있는 유튜브의 ‘무시간성’이 댓글의 놀이화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 8년 전 ‘후유증’, 17년 전 ‘천국의 계단’ 영상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유튜브에서 해당 영상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유머 채널의 한 운영자는 “10년이 지난 영상에 1주일 전까지도 웃긴 댓글이 달린다. 과거 영상의 저장고와 같은 유튜브를 타고 비가 다시 인기를 얻은 것처럼 유튜브 댓글이 제2의 깡, 제2의 비를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