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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원서 써보기도 전에… 실업급여 신청서 쓰는 20대

입력 | 2020-06-22 03:00:00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잘려… 20대 구직급여 신청 1년새 38% ↑




“정규직은커녕 인턴 자기소개서도 한 번 못 썼는데…. 제대로 취업하기도 전에 실직자를 위한 구직급여 신청서부터 썼네요.”

취업준비생인 김효진 씨(23)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려다 한참을 주춤거렸다. 어렵사리 김 씨가 꺼내든 건 ‘취업희망카드’. 구직급여가 지급되는 날짜를 펼쳐 보이며 “일당 3만 원 정도로 계산해 월 90만 원 정도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 중 약 40만 원을 월세로 내야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김 씨는 스무 살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최근 1년 넘게 일했던 서울의 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3월에 권고사직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인원 감축이었다. 김 씨는 나름대로 다양한 업종에서 일한 경력직이었지만 편의점과 주유소, 음식점 등 그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당장 생계가 막막했는데 다행이긴 했다”면서도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정규직 일자리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김 씨처럼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구하지 못하는 20대 실직 청년이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 취업포털 ‘워크넷’에 등록된 기업의 신규 구인 인원은 지난달 14만4000명으로 지난해 5월(18만6000명)보다 22.6% 급감했다. 국내 10대 그룹 중 4곳이 상반기 공채를 취소하거나 미뤘다.

그동안 20대 청년의 구직급여 신청자는 가파르게 늘었다. 29세 이하 구직급여 신청자는 지난달 2만500명으로 지난해 5월(1만4900명)보다 37.6% 증가했다. 모든 연령 중에 가장 증가폭이 컸다. 구직급여는 실업급여의 한 종류로, 고용보험 가입자가 뜻하지 않게 실직했을 때 최장 8개월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고용 위축이 본격화된 2월 말부터 구직급여를 받은 청년 중엔 머지않아 수급이 종료되는 이들도 있다. 두 달 뒤면 구직급여가 끊기는 박모 씨(27)는 “원래도 구하기 어려웠던 여름철 단기 일자리가 코로나19로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 취준생들 “구직급여마저 끊기면…” 수급기간 한시 연장 목소리 ▼

대다수 알바는 고용보험 가입 안돼… 구직급여 신청 자격도 없어 고충

18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직급여 신청 창구 8개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20, 30대 청년이었다. 청년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이직 확인서가 필요하냐” “권고사직 날짜가 잘못 적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질문을 했다.

구직급여 수급 자격을 인정받는 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식점에서 일하다가 올 4월에 해고당한 대학생 최모 씨(22)는 구직급여 수급까지 2개월간 온갖 고생을 했다. 해당 업주가 현재 받고 있는 일자리 안정자금이 끊길까 봐 “최 씨가 자발적으로 관뒀다”고 거짓 진술을 했기 때문이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덜기 위해 사업주에게 지급되는 정부지원금이다. 직원들을 해고하면 지급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 씨는 2개월 동안 근로복지공단에 사실 확인 청구를 하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는 등 고충을 겪었다. 최 씨는 “구직급여를 못 받았으면 전세 대출금을 못 갚아 취업도 못한 채 금융채무불이행자(이른바 신용불량자)가 될 뻔했다. 너무 걱정돼 혼자 울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코로나19로 구직급여 지급액이 낮게 책정되기도 했다. 통상 구직급여 지급액은 퇴직 직전 3개월 동안의 1일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3월 중순 퇴사한 한 취준생은 코로나19 이전엔 일일 9시간 이상 근무했다. 하지만 감염병 확산 뒤 일이 급감해 일일 근무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는 “일일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바람에 구직급여가 크게 줄어들어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어렵사리 구직급여를 받은 청년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청년 취업자는 3명 중 1명꼴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수급 자격이 없다. 지난달 29세 이하 취업자는 388만 명이었던 데 비해 29세 이하 고용보험 가입자는 237만6000명이었다.

전문가들은 한시적으로라도 구직급여 수급 기간을 연장하고 고용보험 미가입자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땐 구조조정된 40, 50대의 피해가 가장 컸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여 20, 30대가 직격탄을 맞았다”며 “구직급여 지원액을 늘리고 청년 구직자의 교육훈련을 확대하는 등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청아 clearlee@donga.com·김태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