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가 사실상 대형마트의 ‘묶음 할인’을 까다롭게 하는 ‘재포장 금지’규정을 공포했다가 거센 논란 끝에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며 없던 일로 돌렸다.
“가격 할인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 했지만 이마저 ‘말바꾸기 해명’논란으로 이어지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1월 28일 “자원재활용법 하위 법령에 속한 ‘제품의 포장 재질·포장 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공포하고 7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대형마트나 면적이 33m² 이상인 매장에서 포장된 상품을 다시 포장해 판매하는 걸 금지하는 게 핵심이다.
당장 업계와 소비자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불필요한 포장을 줄여 환경을 살리는 취지라지만 판매자는 할인 판촉 행위가 까다로워지고 소비자는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조·유통 업계는 물론이고 소비자까지 피해를 볼 수 있는 민감한 정책인데도, 꼼꼼한 시장 분석과 충분한 설득 없이 환경보호라는 명분 갖고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음날(19일) 한 경제지가 ‘묶음 할인 세계 최초로 금지…라면 맥주값 줄줄이 오를 판’이라는 보도를 내자 환경부는 당일 즉각 “정부는 가격할인을 규제하려는 것이 아님”이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환경부는 “늘어나는 일회용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1+1, 2+1 등 끼워팔기 판촉을 하면서 불필요하게 다시 포장하는 행위를 금지하려는 것으로 가격 할인 규제와는 전혀 무관함”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마저 ‘말바꾸기’ 논란으로 이어졌다. 18일 발표했던 환경부 가이드라인에는 ‘재포장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현행법에 허용된 종합제품으로써 판촉(가격할인 등)을 위한 게 아닌 경우’, ‘재포장이나 예외인 경우: 판촉(가격 할인 등)을 위한 것이 아닌 경우’라고 적혀있다.
예시로 2000원짜리 2개를 묶어 4000원에 판매하는 경우를 들었다. ‘묶음 판매’는 괜찮고 ‘묶음 할인 판매’는 안된다는 의미로 충분히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환경부는 결국 21일 “국민들의 의견을 더 들어 추진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환경부는 “제도의 성공적 시행을 위해서는 제조자, 유통자, 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규제의 세부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환경부 가이드라인 때문에 묶음 할인 가격에 맞게 개당 용량을 줄인 제품까지 준비했었다”며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언론에 토로했다.
누리꾼들도 22일 “사전에 철저한 분석 없이 일단 슬쩍 던져보고 반응 안 좋으면 없던 일로 하는 게 대체 몇 번째냐?”고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