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기자의 젊은 글쟁이를 만나다]
추리소설 작가 겸 변호사 도진기 씨.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그는 “읽는 분들이 제 개인적 취향에 호응해준 것”이라고 겸손해 하면서도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쓴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대학을 중퇴하고 특별한 직업 없이 빈둥대며 살면서도 법 지식과 추리 능력으로 어렵지 않게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진구. 정의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추리 과정에만 순수한 희열을 느끼는 이 청년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진구를 만든 사람은 변호사 도진기 씨(53)다. 그는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해 10년 여 추리소설을 써왔다. 이제 50대가 됐지만 추리소설가로서의 활동은 어느 때보다 왕성하다. ‘젊은 작가’로 불릴 만하다.
최근 서울 서초구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도진기 씨는 진구에 대해 “절반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고, 절반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법대에 입학한 뒤 공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지독하게 방황했던 그이다. 진구는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과 멀지 않다고 했다. “정의로운 변호사, 몸을 던지는 의사…. 소설이나 드라마에선 대개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이어야 하겠지만 제게는 이들이 판타지였습니다. ‘진구’가 좀더 현실적인 인물이 아닐까요.”
도진기 씨는 “뻔하지 않은 서사를 만들기 위해 구상을 거듭한다”면서 “중요한 건 이야기다. 나는 독자 편이니까”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DB
물론 유년기의 그 세대를 키운 것 중 하나는 추리소설이다. 도진기 씨 역시 코난 도일과 아가사 크리스티, S.S.반 다인, 존 딕슨 카 같은 추리 작가들의 작품에 푹 빠졌었다. 그렇다 해도 창작은 독서와는 다른 영역이다. 법률가의 경험과 지식이 추리소설의 길로 이끈 것일까. 그는 “판사라는 직업은 내가 쓰는 추리소설과는 연결 고리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추리소설은 트릭을 이용하는 본격 미스터리물이다. “트릭을 써서 살인하는 일은 드뭅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살인사건들은 대개 욱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요. 그런 면에서 제 소설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겠죠(웃음). 그렇지만 호기심 많고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묵직한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본격 미스터리를 택한 것도 작가 자신이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충실함으로 따지면 대학교재가 최고일 텐데, 일반 독자들은 안 읽잖아요. 책을 읽을 때 뭣보다 중요한 건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도진기 씨의 새 소설 ‘세 개의 잔’.
도 씨는 “작가는 두 가지 재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글을 잘 쓰는 재능,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다. 이 두 재능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상반된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순수문학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강해 작가들이 문장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는데, 장르문학 작가들은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면서 “과격하게 말하면 맞춤법이 틀려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독자들은 좋아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유튜브의 시대에 글의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작가에게 물었다. 그는 “상상력”이라고 답했다. “영상을 통해서 전달되는 이야기는 그 영상 이상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통해 전달되는 서사는 독자마다 다르게 상상할 수 있어요. 특히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은 어떤 매체도 글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도진기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
① 서사에 공을 들인다=“장르문학 작가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목표이지 노벨문학상이 목표가 아니니까요. 저는 구상에는 몇 달씩, 심지어 1, 2년씩도 걸립니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쓰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②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구상을 밀고 나가라=“‘세 개의 잔’을 처음 구상했을 때는 현재 소설의 중반 정도 이야기까지만 떠오른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중반까지만 쓰고 마칠까 했는데 스스로 충분히 해결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뻔한 얘기가 아니라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개연성을 갖추도록 숙고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