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대원국제중학교 학부모들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국제중 지정 취소에 항의하는 침묵 시위를 하고 있다. 2020.6.22/뉴스1
‘남과 다른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매번 논란을 부른다. 2009년 조기 유학 열풍이 거셀 당시 “한국에서도 양질의 국제 교육을 시행하자”며 국제중학교가 첫선을 보였다. 의무교육인 중학교 단위에서 국제중은 예체능 중학교와 함께 교과 과정에서 ‘평준화의 틀’을 일부 허물었다. 서울에 2곳, 경기 부산 경남에 1곳씩 전국에 5곳이 설치됐다.
이후 정권이 달라지고 교육감이 바뀌면서 국제중이 시행하는 교육에 대한 규정은 ‘국제교육’에서 ‘특권교육’으로 달라졌다. 급기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9일 서울의 국제중 2곳에 대해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또 평가 결과에 따라 서울에 있는 대원국제중, 영훈국제중 두 학교의 특성화중 재지정 불가를 선언했다. 이 결정대로라면 이들 학교는 내년부터 일반중학교로 전환해야 한다.
특성화 학교 평가와 재지정은 교육 당국의 권한이지만 해당 학교들은 행정소송, 나아가 헌법소원까지 강행하기로 했다. 개별 학교가 교육청에 맞서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반발하는 것일까. 강신일 대원국제중 교장(62)을 18일 서울 광진구 대원국제중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해 봤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번에 평가라는 절차를 밟긴 했지만 공정한 평가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번 평가에는 교육의 본질을 벗어난, 교육 외적인 것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교육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평가를 할 수 있는가 싶다.”
―어떤 부분이 ‘교육 외적’이라는 건가.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을 없애겠다는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평가에 나섰다. 재지정 평가 기간이 올해 2월까지였는데 평가계획서가 지난해 12월 학교에 도착했다. 준비 시간이 짧았다.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이 5년 전에 했던 평가와 다른 항목들이 도착했다. 재지정 평가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것은 학교 구성원들의 만족도다. 통상 국제중의 점수가 높은 부분이다. 5년 전에는 학생, 학부모, 교사 3개 구성원의 배점이 각각 5점씩 총 15점 만점이었다. 이번엔 각각 3점씩 총 9점으로 낮아졌다. 우리 학교가 그 항목에서만 예년 배점으로 평가를 받았더라도 재지정 평가를 통과했을 것이다.”
―평가 과정에서 나온 다른 문제는 없었나.
―이번에 경기 청심국제중, 부산 부산국제중은 재지정됐다. 서울 국제중 2곳만 취소됐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이번에 재지정 평가를 발표하면서 서울시교육청이 경기, 부산교육청과 협의해서 국제중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안다. 표면적으로는 그 말이 맞다. 국제중 재지정 기준점을 60점에서 70점으로 올리고, 감사 지적사항에 따른 감점을 5점에서 10점으로 높인 건 동일하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아까 말한 학교 구성원의 만족도 항목에서 서울은 총점을 크게 깎았지만, 경기 부산은 5년 전 평가 지표 그대로다. 감사 결과로 감점을 받도록 한 것 역시 서울은 감사 한 건에 지적된 인원수에 따라 감점을 차등화했지만, 경기 부산은 감사 건수대로 감점을 줬다. 서울 지역 국제중이 감사 1건당 감점을 두세 배 이상 받게 되는 구조다. 서울만 점수를 적게 주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게 뭔가.”
―만약 그렇다면 유독 서울만 국제중 재지정 기준을 높인 이유가 뭔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출마 공약이 자율형사립고, 국제중 폐지였다. 이미 조 교육감은 국제중 폐지 의사를 수차례 발표했다. 5년 전부터 있던 평가 지표를 평가 직전에서야 급하게 바꾸고, 현장의 의견 수렴도 받지 않는 건 의도가 뻔하다. 어린아이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우리 학교의 경쟁률은 21.8 대 1이었다. 해마다 20 대 1 안팎 수준이다. 그렇게 학생과 학부모가 몰리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자. 결국 우리 교육이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어서다. 처음 국제중을 만든 목적은 해외 유학을 통한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조금 다른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또 어렸을 때 해외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오는 학생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다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게 옳은 방향일까. 나는 우리 학교 같은 국제중이 더 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국제중이 폐지 불가의 ‘성역’은 아니지 않나.
“맞다. 국제중도 자사고나 특수목적고처럼 시대정신에 의해 법으로 만들거나 없앨 수 있다. 국제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교육청이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거쳐 우리 학교에 대한 폐지 결정을 내렸다면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결국 수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평가에 그런 과정이 있었나? 5년 전 평가를 할 때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표를 만들고, 배점을 구성한 뒤에야 평가에 나섰다. 이번엔 그런 절차가 전혀 없었다.”
―국제중이 사라지면 서울에서 중학교 단계의 특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남게 되나.
“아예 없다. 사실 특화교육, 엘리트 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다만 많은 국가가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특화교육을 하고 있다. 국민이 엘리트교육을 인정하고 합의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학생들이 성장해서 앞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고 먹여 살릴 것이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이 우리보다 먼저 외국어 교육기관을 만들어 인재를 길러 냈다.”
―서울시교육청은 “대원국제중이 오후 9시까지 영어 교육을 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건 어떻게 보나.
“우리 학교가 가장 경계하는 게 ‘사교육 유발’이다. 학생들이 사교육 받는 걸 막으려고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시키고 학생의 참여를 늘렸다. 나는 우리가 대한민국 어느 학교보다 방과후 학교 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자부한다. 특히 일주일에 이틀은 야간자율학습을 오후 9시까지 시킨다. 학원에 가는 대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고, 공부 방법을 터득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시간에 학원 숙제는 못하게 하고 영어 원서나 책을 읽도록 시킨다. 국제 인재를 기르는 학교가 영어 교육을 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교육청도 국제중의 반발을 염두에 두고 결정했을 것 같다.
“조 교육감이 최근 서울시의회에 출석해 국제중 폐지 정책 관련 질의가 나오자 ‘법적 소송은 현재로서는 교육청이 유리한 지위에 놓여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충격을 받았다. 만약 우리가 소송을 해서 교육청이 지게 되면 세금으로 소송에 대응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미 자사고는 서울시교육청의 지정 취소 처분에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 인용됐다. 그런 게 국민 세금 낭비다.”
―개별 학교 입장에서 시교육청과 충돌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듯한데….
“사실 국제중 폐지로 영향을 받는 사람은 졸업생을 포함하더라도 수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절박한 느낌을 받는다. 교육청 입장에선 적당히 평가해서 취소하는 게 쉬운 일일 수 있지만, 우리는 그걸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고 평가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선입견과 편견에 함몰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절차가 남았는지.
“25일 서울시교육청의 청문 절차를 밟는다. 이후 ‘공’이 교육부로 넘어가면 교육부가 교육청의 국제중 지정 해제에 대해 동의하거나 비동의하게 된다. 청문 과정이나 교육부의 동의검토 과정에서 무엇이 옳은지 조금만 더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 특히 서울 국제중의 세부 평가항목이 경기, 부산과 달랐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강 교장과의 인터뷰가 끝난 뒤 서울의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오른 22일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 학부모 60여 명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조 교육감의 특성화중 지정 취소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 학부모는 “서울의 국제중 폐지가 확정되면 살아남은 국제중과 일부 고비용 국제학교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의 이른바 ‘8학군’이 부활할 것이란 불만도 터져 나왔다.
강 교장은 “서울시교육청의 청문이 끝나면 우리 학교가 받았던 평가 점수를 모두 공개하고 조목조목 따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원국제중은 서울시교육청 지정 기준 점수(70점)보다 낮은 60점 중반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