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계획이 공정거래위원회 반대에 부딪혀 반쪽짜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포장재를 줄이겠다며 묶음포장 할인이 사실상 중단될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가 여론 반발에 밀려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부처들이 국가 정책이 미칠 종합적 결과와 장단점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기 업무의 관점에서만 권한을 행사하려다 생긴 일들이다.
CVC 허용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1일 발표한 ‘100조 원 규모 투자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다.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해 벤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획으로 현 정부가 발표한 정책 중 드물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공정위는 “벤처회사에 대한 내부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총수 일가가 사익을 편취하거나 편법적 경영 승계에 악용할 우려가 있다”고 반대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사(私)금고처럼 이용한 건 수십 년 전 과거의 관행이다. 공정위는 주요 기업들이 높은 신용을 바탕으로 저금리의 회사채를 발행해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조달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시대착오적인 공정위의 지적에 투자 활성화가 목표인 CVC는 출발부터 각종 제약에 묶이게 됐다.
온라인에서 들끓은 비판 때문에 환경부가 백지화하지 않았으면 묶음할인 판매를 금지한 세계 첫 번째 나라가 될 뻔했다. 국가경제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살피지 않고 자기 부처, 자기 권한의 관점에서만 사안을 추진하는 관료가 많으면 이런 일이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