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여유롭게 준비한 덕분에 2시간 일찍 도착했고, 후배가 알려준 맛집을 찾아가 소머리국밥을 먹고 터미널로 향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배를 기다렸다. 배는 9시 반에 항구를 떠났고 잠시 후 선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파도가 다소 거세 30분 정도 지연될 예정입니다. 멀미가 심하신 분들은 승무원에게 멀미 봉투를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배가 울렁거렸고 울릉도는 다시는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출렁거렸다. 어금니를 꽉 물고 참는데 옆에 아주머니는 편하게 휴대전화를 보고 계셨다. 아주머니의 휴대전화는 액정이 깨끗했고 꽃 사진을 계속 넘겨보고 계셨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 휴대전화 액정은 늘 깨끗했고, 자식이나 손주 아니면 늘 꽃 사진뿐이었다. 나는 한 번만 떨어뜨려도 늘 액정이 깨지고, 수리하느라 돈이 들었는데 어머니 휴대전화는 왜 늘 깨끗하고, 고장이 안 나는지. 그냥 조심성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요즘은 휴대전화 액정이 깨끗하다. 딸아이는 툭하며 깨먹고 수리해주면 며칠 못 가 또 금이 가는데, 요즘 내 휴대전화는 3년째 긁힌 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다. 특별히 조심한 것 같지도 않은데,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괜히 서글프다. 나도 모르게 꽃을 보면 사진을 찍게 된다. 이 또한 나이 탓인가.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반. 배에서는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는데 내려 풍경을 보니 1초 만에 용서가 됐다. 아름답다.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행남 해안산책로를 둘러보고, 도동 등대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용궁’이라는 해산물 집에서 해산물 모둠을 먹고, 남서 일몰 전망대에서 1박을 하고, 다음 날은 나리 분지에 갔다가 깃대봉 전망대에 올라가고, 마지막 날에는 송곳봉과 성인봉을 오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떠나기 전날 맛있는 따개비 칼국수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사장님이 묻는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서울요! 울릉도 아름다워요!” “저도 1년 전에 남편 따라 들어왔는데, 여기 살기 전에는 울릉도가 아름다웠는데 막상 사니까 풍경이 눈에 안 들어오네요.” 하긴, 우리도 여행이니 호들갑을 떨고 좋아하는 거지, 막상 여기 살면 익숙함에 무뎌져, 아름다움을 잊고 살 것 같다. 그래도 아름다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운이 오래갈 것 같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아내가 다시 이상은의 노래를 틀었는데 노랫말이 새롭게 들렸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괜히 울컥해 아내에게 물어봤다. “여보,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아니, 삶이 끝나지, 사랑은 안 끝나.” 작가랑 오래 살더니, 작가 다 됐네, 이 양반.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