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김덕영 감독
6·25전쟁이 낳은 남한의 전쟁고아들은 미국과 서유럽으로 입양되어 갔고, 북한의 고아 5000여 명은 위탁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루마니아, 폴란드, 헝가리 등 당시 소련의 위성국인 동유럽 국가로 보내졌다. 당시 이 북한 아이들을 가르친 루마니아 교사 미르초유 할머니와 인솔자였던 남편 조정호 씨가 갑작스러운 북한 송환으로 생이별한 사연은 김 감독이 제작해 2004년 지상파 방송사의 6·25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다.
김 감독이 미르초유 할머니의 이야기에 더해 동유럽과 북한이라는 두 개의 고향을 지닌 기구한 전쟁고아들의 삶을 추적한 ‘김일성의 아이들’이 25일 6·25전쟁 70주년에 극장 개봉한다.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동유럽에서 생활한 북한 전쟁고아 5000여 명의 흔적을 추적한 분투기가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방송 15년 만에 2019년 1월 가방 7개를 싸서 변변한 현지 연락처도 없이 떠난 것이 영화의 ‘크랭크인’이었다. 약 2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도 사재를 털어 충당했다.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에서 6·25전쟁 후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 두 명이 현지 어린이와 어깨동무를 한 모습.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제공
그는 아이들의 흔적을 뒤쫓기 위해 동유럽 각국의 문서보관소와 학교, 기숙사를 일일이 찾았다. 이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유럽 사람들을 비롯해 역사학자들과 언론인들의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당시 기숙사를 탈출한 아이들이 인근에 정착해 현지인과 결혼하고 택시 기사 등으로 생활했다는 각종 제보를 추적했지만 정착한 ‘아이들’을 끝내 만나지는 못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대와 국립기록보관소에 잠자던 북한 아이들 관련 기록을 찾아낸 것은 큰 성과였다.
부모를 잃고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유럽 땅으로 흘러온 북한의 아이들은 대부분 단체 생활을 했다. 벽안의 선생님을 ‘엄마’ ‘아빠’로 부르며 제2의 고향에 마음을 열었다. 김일성 칭송 노래를 부르고 단체로 걸을 때는 줄 맞춰 행진하도록 교육받았지만 숲속에서는 이내 대열을 이탈해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었다. 이후 북한이 1956년부터 차례로 아이들 대다수를 본국으로 송환시키면서 이들은 동유럽이라는 제2의 고향과도 생이별하는 또 다른 비극을 겪었다. 영화에는 폴란드를 고향으로 여기던 아이가 폴란드로 돌아가려 탈북을 시도하다 중국 국경에서 목숨을 잃은 사례도 등장한다.
“북한에 자주 다녀온 인사들이나 미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할 수 있는 역사를 담아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합리적으로 우리가 겪은 이 비극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