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했던 대남 확성기 재설치 남북정상 판문점선언 무효화 수순 일각선 “내부 결속용 조치” 분석도
대남전단 살포를 예고한 북한이 최전방 곳곳에 대남 확성기를 재설치하는 등 대남 심리전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22일 서부전선 등 비무장지대(DMZ) 북측 지역 10여 곳에 확성기 설치 작업을 거의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9·19남북군사합의 파기 선언과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4·27판문점선언’의 무효화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중단 등 모든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해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나가기로 한 남북 정상 간 합의를 폐기함으로써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긴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판문점선언 직후 우리 군은 40여 대의 고정·이동식 확성기를 철거했고, 북한도 40여 곳에 설치한 확성기를 제거한 바 있다. 군 관계자는 “남북관계는 더 기대할 게 없다는 점을 부각시켜 도발 명분을 쌓기 위한 징후로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확성기 재설치를 강행한 것은 일련의 대남 강경 공세의 정당성을 접경지역의 군과 주민들에게 부각시켜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행보로 봐야 한다는 것. 군 소식통은 “‘최고 존엄(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건드린 대북전단을 빌미로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내부선전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의 맞대응을 유도한 뒤 후속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의 도발에 상응한 조치를 공언한 우리 군이 대남 확성기에 맞서 대북 확성기를 재설치할 경우 이를 트집 삼아 모종의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심리전 수단인 만큼 다시 설치하면 2015년처럼 설치 지역에 기습포격을 감행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은 북측 상황을 주시하면서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확성기 설치를 공식화하지 않았고, 청와대 등 정부당국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선행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확성기 방송 재개 등 선을 넘으면 맞대응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이와 관련해 군은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