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참전용사 벨라스코, 14개월간 담은 사진 152장 공개 태극기 놓고 현지서 화상회견 “혹독한 추위 정말 힘들었어요”
남미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인 콜롬비아의 참전용사 힐베르토 디아스 벨라스코 씨가 전쟁 당시 14개월간 촬영한 사진이 26일부터 전쟁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된다. 그의 카메라에는 눈 쌓인 겨울 트럭에 탑승한 동료들의 모습(왼쪽 사진)부터 봄에 핀 들꽃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동료들(오른쪽 사진)까지 사계절 시간이 모두 담겼다. 힐베르토 디아스 벨라스코 씨·주한 콜롬비아대사관 제공
벨라스코 씨는 1952년 4월 19세 나이로 콜롬비아 유엔 다국적군에 자원해 1953년 8월까지 14개월간 한국에 머물렀다. 당시 직접 찍은 필름 사진 약 400장을 소중히 보관해 왔고 이번에 152장을 공개한다. 26일부터 6개월간 전쟁기념관 웹사이트에서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주한 콜롬비아대사관 주최로 23일 한국 언론과의 화상회견을 진행한 벨라스코 씨는 수도 보고타 인근의 아들 집에서 태극기를 배경에 놓고 제복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코닥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5달러를 주고 샀다. 아직도 사진이 잘 찍힌다”면서 “취미로 찍은 사진이 역사가 될 줄 몰랐다”며 미소를 지었다. 콜롬비아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6·25전쟁에 참전한 나라다.
그는 한국의 매서운 겨울이 견디기 힘들었다며 “눈이 거의 없는 남미에서 왔는데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던 추위였다”고 토로했다. 꽃이 핀 들판에서 활짝 웃고 있는 세 전우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날씨가 정말 따뜻했다”고도 했다.
전쟁 통에 어떻게 필름을 구하고 인화까지 했을까. 그는 일본을 오가는 유엔군 인력을 통해 필름을 얻었다. 사진을 찍은 후에는 하와이로 가는 동료에게 부탁해 그곳에서 인화를 했고 이를 선박 우편으로 받았다. 벨라스코 씨는 “아직도 사진을 받았던 봉투까지 보관하고 있다”며 우편 도장이 선명한 봉투를 흔들어 보였다.
어느 날 밤 폭격 등으로 동료를 한꺼번에 잃은 기억도 선명하다고 했다. 그는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말 그대로 시체 위를 걸어 다녀야 했다.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도 숨졌지만 처음에는 찾지 못했다. 그 친구가 당시로는 흔치 않게 수염을 길러 손으로 일일이 시체들을 만져가며 친구의 시체를 겨우 찾았다”고 회고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