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스포츠 코리아’ 신화의 젖줄 전국체전

입력 | 2020-06-24 03:00:00

1920년 체육회 주최로 첫 걸음마… 1934년 종합대회 확대, 작년 100회
1948년 올림픽 첫 출전의 디딤돌, 선수촌 건립-소년체전 출범으로
유망주→대표팀 선수관리도 변혁
올림픽 2번 치르며 국격도 도약… 스포츠 선진국 위한 새 출발대에




전 조선경기대회로 시작된 전국체육대회는 100년 역사 속에서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을 끌어올려 세계 수준으로 이끈 디딤돌 역할을 했다. 1969년 제50회 서울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 화려한 매스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스포츠 역사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 창립이 100주년을 맞았다. 1919년 3·1운동 이듬해, 일제에 의해 삶의 기본권이 완전히 박탈됐던 시기에 조선체육회는 조선인의 꿈과 희망을 되살리는 ‘심장 박동기’로 1920년 7월 13일 태어났다. 한 세기 동안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1948년 개칭) 주도로 단계별 발전을 거친 한국 스포츠는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며 이제 다가올 한 세기를 책임질 미래 동력의 한 축이 됐다.

“조선 인민의 인격과 지식을 무르익게 만들고, 의견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 없다는 건 실로 우리의 잘못이고, 민족의 수치다.”

조선체육회의 창립 취지서 전문 내용이 보여주듯, 당시는 민족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체육으로 하나 된 힘이 절실했다.

이듬해 축구와 탁구, 정구 등 7개 경기 단체를 산하에 두고 실질적인 체육 단체로 영역을 넓힌 조선체육회의 가장 큰 성과는 현재 국내 최대 스포츠 축제인 전조선경기대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현재 전국체육대회의 모태다. 1920년 전 조선야구대회가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전조선경기대회는 1934년 15회 때부터 종합체육대회로 확대된 뒤 지난해 100번째 대회를 개최했다.

전국체육대회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세계로 향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1948 런던 올림픽과 1952 헬싱키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한 밑바탕이 됐다. 광복 후 1946년 한강특설링크와 창경원 연못에서 처음 시작된 동계전국체육대회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1948 생모리츠 겨울올림픽에도 첫 얼굴을 내밀게 된다. 비인기종목 선수들도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전국체육대회를 통해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대표급 선수 선발과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1966년 태릉선수촌 건립으로 이어졌다. 1972년 출범한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전국체육대회와 체계적으로 연동되면서 유망주에서 성인으로 이어지는 선수 자원 관리에도 눈을 뜨게 됐다. 스포츠 변방의 나라는 1980년대부터 세계 수준에 올라선 선수들을 배출하고 그러면서 이들의 영향으로 스포츠 인구가 생활 스포츠로 유입되는 선순환의 원동력이 됐다.

한국 스포츠의 최대 성과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최다. 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신설돼 체계적인 스포츠 정책 수립, 발전 모색의 연속성을 확보하게 된다. 또 스포츠과학연구소(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설립으로 경기력 향상과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 개발 등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가 시도됐다.

1986 서울 아시아경기를 리허설로 치르고 개최국 자격으로 전 종목에 출전한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순위 4위를 차지하며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유도, 레슬링, 양궁, 태권도, 탁구를 비롯해 구기종목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여자 핸드볼은 ‘세계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스포츠는 2002 월드컵과 2003 대구 여름유니버시아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4 인천 아시아경기 등을 연이어 유치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한 2018 평창 겨울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러내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올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밑바닥에서 기적을 일궈낸 한국 스포츠는 스포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대에 서서 다음 100년과 마주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