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부산 감천항에 입항한 러시아 국적 냉동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2020.6.23 © News1
부산 감천항에 입항해 하역작업을 하던 러시아 선원 17명이 집단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방역망에 비상이 걸렸다.
기존의 외국인 입국자의 경우 검역과정에서 코로나19 선별진료를 받을 뿐 아니라 2주간 의무적으로 격리돼 문제가 없으나 이번 사례는 접촉자가 다수 발생한 상태라 기존과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하선을 하지 않는 선원이었기 때문에 ‘전자 검역’이라는 간소화 절차를 밟았는데 이 절차가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선박이 입항하면 기본적으로는 전자검역을 실시하기 때문에 법과 절차에 문제는 없었지만 시국이 시국 나름인 만큼 절차를 강화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들 모두는 정박을 해서도 하선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중대본에 따르면 2개의 러시아 선박은 정박 후에도 사다리를 통해 선원들이 오갔다. 선원 중 확진자가 더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들과 밀접접촉한 인원이 무려 176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접촉자에는 하역잡업을 한 부산항운노조원을 비롯 도선사와 하물 검수사, 하역업체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특히 접촉자 중에는 수산물 품질관리원 소속의 공무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알려진대로 하역작업 중 마스크 착용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과 거리두기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진자는 대거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항만방역체계에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 이번 사건은 애초에 러시아 선박이 검역법을 위반한데 이어 이를 검증해야할 항만 당국이 검역을 허술하게 진행해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정례브리핑에서 “(러시아 화물선은) 부산검역소를 통해 입항 전부터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볼 수 있는 고열환자가 3명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신고되지 않았거나 밝혀지지 않았다”며 “부산검역소 등을 통해 조사를 더 실시해 검역법에 따른 조치를 취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애초에 러시아 선박의 잘못이 있었지만 이를 확인할 방역 당국의 안이함도 이번 사태를 불렀다. 항만 당국은 러시아 선박 승선원들이 하선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자검역을 실시했다.
전자검역은 보건상태와 검역질문서 응답지, 항해일지 등을 전자시스템으로 미리 받아 검토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하선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항만에 근무하는 인원들과의 접촉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전자검역 자체가 형식적인 신고만 된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규모가 세계 3위에 달하는 등 전파 위험이 있는 국가인데, 별도로 승선검역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하역 작업 전 모든 선박에 대한 전수검사 필요성이 제기된다.
권 부본부장은 “승선검역을 중국, 이란, 이탈리아만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바로 개선을 해서 고위험국 즉 (코로나19) 발생이 증가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전자검역보다는 승선검역 위주로 검역을 강화하는 방안을 진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