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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 위해 음반 수백 장 사기도…아이돌 가수들 줄줄이 ‘영통 팬싸’

입력 | 2020-06-24 15:59:00


김나영 양(16·가명)은 최근 그룹 ‘세븐틴’의 CD를 여러 장 샀다. 사인회에 응모하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영통팬싸’다. ‘(휴대전화) 영상 통화 팬 사인회’의 준말이다.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사인회는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비대면 시대, 음반 판매량을 올리는 방법으로 영상 사인회가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24일 음반업계에 따르면 6월 한 달간 열리는 영상통화 사인회만 수십 건에 달한다. 음반몰 ‘예스24’ 한 곳만 해도 4월 4건, 5월 16건, 6월 10건(24일 현재)의 영상 사인회를 열었다.

주체는 대부분 아이돌 가수다. 최근 백현, 갓세븐, 뉴이스트, 류수정, H&D, 세븐틴, 하성운, 모모랜드 등 새 앨범을 낸 아이돌 가수들이 줄줄이 ‘영통’ 사인회를 열었다. 알라딘, 예스24, 핫트랙스 등 온라인 음반몰부터 전국 10여 개의 오프라인 음반점까지 거의 모든 음반 매장이 앞 다퉈 사인회를 유치한다.

사인회는 아이돌 그룹 CD 판매의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여러 장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져 일부 팬은 수백 장, 박스 단위로 구입하기도 해 가요기획사와 음반 매장 입장에서는 팬 숫자 대비 판매량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된다.

‘영통’의 구조는 간단하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레코드점에서 CD를 구입해 응모권을 제출하면 건당 30~50명을 추첨해 아이돌과 짧은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하게 된다. 팬의 이름을 적은 사인 CD는 별도로 추후에 전달한다. 서울 마포구 A레코드점 관계자는 “오프라인 사인회 때만큼 매출이 나온다. B그룹의 경우 오프라인 사인회를 연 지난 앨범과 비슷한 2000장 정도가 우리 매장에서 ‘영통 팬싸’ 응모를 통해 팔린 것으로 추산한다”고 했다.

영상통화 사인회는 2월 코로나19 국내 유행 이후 실험적으로 진행되다 4, 5월부터 본격화해 이제는 신작 판촉의 필수 코스가 돼버렸다. 4월, 한 그룹이 오프라인 사인회를 열었다가 ‘이 시국에 오프라인 모임이 웬 말이냐’며 일부 팬의 비난을 받은 이후, 사인회는 곧 영상통화가 됐다. 기존 오프라인 사인회는 대개 150~200명 규모의 소극장이나 호텔 부속 홀에서 열렸다.

영상통화 사인회는 소속사 건물이나 카페에 멤버들이 모여 휴대전화를 들고 시작한다. 최근 여러 건의 사인회를 주관한 A레코드점의 관계자는 “배경 예쁜 카페를 섭외하는 게 출발점이고 이후에는 여러 대의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휴대전화 확보는 사인회를 주관하는 매장의 골칫거리였다. 소속사에서는 아이돌 멤버는 물론 회사 직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노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B레코드점 관계자는 “전화기를 두 대 이상 가진 주변 지인에게 대여하기도 했다. 카카오톡 영상통화 기능을 주로 쓰는데, 사인회 전후에 카톡 프로필을 ‘OO레코드’ 형식으로 일괄적으로 초기화하는 것도 꽤 고단한 업무”라고 했다.

오프라인에서 회당 100명 정도의 팬을 초대했다면, ‘영통’은 30명선이 일반적이다. 팬 수가 줄었다고 해서 멤버 입장에서 사인회가 수월해지는 건 아니다. 한 아이돌 음반사 관계자는 “영상통화는 녹화와 캡처가 가능해 기록이 남아 돌아다닐 수 있기에 멤버들이 일분일초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에서는 옆에 앉은 멤버들과 대화하며 긴장을 풀 수 있지만, ‘영통’에서는 옆 멤버가 릴레이식으로 이미 다른 팬과 통화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피로도가 더 높다”고 귀띔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