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부동산 매물이 붙어있다. 2020.6.22/뉴스1 © News1
서울 강동구 A단지에 3년째 전세로 거주 중인 김모 씨(40)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6·17부동산대책에 따라 재건축 조합원의 실거주 요건이 신설되면서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이유에서다. 집주인은 이사비와 중개수수료 등을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김 씨는 “계약기간이 1년 남아있어 요청을 꼭 들어줄 이유는 없지만, 비용은 보상해주겠다고 하니 집주인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거주하고 싶지 않다”며 “인근에 전세 매물이 많지 않고, 가격도 많이 올라 반전세로라도 가야하나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주 6·17 대책을 발표한 이후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세 세입자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재건축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구두 합의가 이뤄진 전세 재계약이 무산되는가 하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을 중심으로 인근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며 가격도 오르고 있다.
24일 준공 후 20여 년이 지난 강동구의 한 구축 아파트 내 부동산에 따르면 이곳에서 이달 초부터 진행되던 전세 재계약 4건 중 절반이 지난 17일 대책 발표 이후 엎어졌다. 2년 전보다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오른 가격에 재계약을 하기로 구두 협의가 끝났지만, 집주인이 2년 실거주 요건을 미리 채워두기 위해 들어와 살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계약이 무산된 세입자가 다른 임대차 매물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6·17 대책에서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로 전세 물량이 감소하고, 가격은 뛰고 있어서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인 양지영R&C연구소의 양지영 소장은 “재건축 조합원의 의무 거주기간 요건 신설, 주택임대사업자의 대출 규제와 세 혜택 축소, 갭투자 규제 모두 전세 물량을 없애는 것과 다름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23일부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을 비롯해 주거 선호도가 높은 강남권 주요 단지들의 전세 가격은 오르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면적 27㎡의 전세 가격은 9일 3억9000만 원(22층)에서 20일 4억9500만 원(25층)에 실거래 신고가 이뤄졌다. 약 10일 만에 1억 원 이상 가격이 오른 셈이다.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의 전세 실거래 가격도 8일 9억 원(16층)에서 19일 10억 원(3층)으로 올랐다. 강남구 도곡동 럭키아파트의 같은 면적도 8일 6억9000만 원에서 21일 7억5000만 원으로 전세 실거래 가격이 올랐다.
전세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부가 전세 매물을 늘릴만한 획기적인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현 상황을 반전할 만한 요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지난해 7월 이후 51주 연속 상승세다. 주간 전세가격 상승률은 6월 1일 0.04%에서 8일 0.06%, 15일 0.08%로 상승폭 또한 가팔라지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 구입 대출을 옥죄면서 현금을 가진 부자 외에는 세입자로 살라고 강요하다시피 한 정부가 이번에는 전세 공급마저 줄이는 정책을 내놨다”며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전세 실수요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