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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주년, 다시금 기로에 선 남북관계[우아한 전문가 발언대]

입력 | 2020-06-25 14:00:00


올해는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대한민국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된 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만, 불행히도 남북관계는 다시금 살얼음판을 걷게 된 모습입니다. 2018년 평창을 찾았고, 남북 해빙모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태도를 뒤바꿔 말 폭탄들을 쏟아내면서, 결국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바로 다음 날인 16일에 개성남북연락소를 폭파시켜 버렸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혈세로 지어진 건물이 처참히 붕괴되는 모습은 국민 모두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충격을 주었습니다. 북한의 이런 극단적인 행동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으시겠지만, 2018년 내내 이어지던 평화를 향한 행보들을 떠올릴 때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지금 이러한 행동은 아래와 같은 상황에 대한 반증이라고 분석됩니다. 첫째, 북한의 내부 상황이 대단히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북한은 그 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국면 속에서 경제적인 난국을 타개하고자, 그나마 제재를 피해갈 수 있는 관광 산업 육성에 집중해 왔습니다. 그런데, 남북경협도 진척이 더딘 상황에서 그간 유일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해 버렸고, 그 여파로 전 세계적으로도 관광업이 가장 크게 타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과 중국 간의 교역마저 현저하게 위축되었다고 하니, 당장 북한 내에서 생필품조차 제대로 공급이 되고 있을지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북한의 권력자들은 이러한 극한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결국은 또다시 대한민국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부 결속 차원에서도 대남 공세를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도발을 재개하는 북한이 하필이면 문재인 정부의 남북 화해를 위한 노력의 상징과도 같은 연락사무소를, 그것도 문 대통령의 6·15 20주년 기념사가 있었던 바로 다음날 폭파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북한의 불만과 분노가 매우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향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국 문제는 하노이 “노 딜”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를 분석하려 할 때에 결국은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노 딜(No Deal)”로 끝나버리게 된 시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논란의 파장 속에 출판된 존 볼턴(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서 그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타결되었으면 이는 미국에게 재앙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는데요, 그의 회고록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이른바 미국의 “매파” 혹은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외교안보 정책가들의 심중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결국 하노이에서 영변 카드로 승부수를 던진 북한과 미국 강경보수 정책가들의 입장이 궁극적으로 그 간극을 좁히지 못했던 것이 오늘의 긴장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시와 오바마 정권에서 국가안보회의(NSC) 한국·일본·오세아니아 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는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23일 국내 언론 칼럼을 통해 “볼턴이 더 나은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의 대북 정책 실패에 대한 서술은 설득력이 있다”면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한미 동맹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가 오히려 더 큰 문제로 닥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볼턴과 테리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결국 미국 내에서도 한미-미일 동맹으로 중국을 위시로 하는 대륙세력에 적극 대응하고자 하는 세력과 고립주의 전통을 이어 받아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 전략을 추구하는 세력이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 다시금 명확해 집니다.

이는 우리에겐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전자가 득세할 때에는 한미동맹이 남북관계 보다 중요시 되었고, 후자에 힘이 실릴 때는 동맹이 흔들리는 듯 한 상황도 몇 번이고 경험하였으니까요. 북한도 이러한 미국 내의 역학관계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무려 66시간에 걸친 장시간 열차여행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노이에 온 것은 트럼프라는 워싱턴의 엘리트 정책가 서클에서 벗어나 있던 사업가가 대통령이 되면서 찾아 온 기적 같은 기회의 틈을 노려야겠다는 판단과 우리 정부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북한의 실망과 분노는 볼턴 같은 워싱턴의 기성 엘리트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북미회담을 주선하다시피 한 우리 정부에게도 컸으리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대단히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그 어떤 도발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겠지만, 그 기저에 깔린 북한의 실망과 분노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생활해야 하는 우리에게 여전히 크나큰 과제로 남습니다.

다만 북한은 김여정을 전면에 앞세움으로써 소위 “최고 존엄”이라는 김정은을 위한 카드는 남겨 두었습니다. 2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정은의 사회로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인민군의 대남 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속도조절을 하면서도 한국을 비롯한 국제적 반응을 살피며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모습. © News1



●다시금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그러니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는 보다 솔직하고 담대한 자세로 잘못한 것은 겸허하게 인정하고 반성하는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정리하고 주변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평가할 만한 부분이겠지만, 그저 만남을 주선하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냉철하게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노이에서의 노 딜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 스스로 얼마나 준비하고 있었나, 노 딜 이후에는 평양과 워싱턴에 무엇을 대안으로 제안할 수 있었는가, 도쿄와 베이징에는 어떤 도움을 구했어야 하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모호한 슬로건 아래 혹은 전략적 모호성을 핑계 삼아 우리가 마땅히 주장하고 요구했어야 하는 것들을 감추었던 건 아닌가, 우리의 바라는 바를 선제적으로 제안하기는커녕 그저 벌어지는 상황에 반응하기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나, 지난 3년 남짓한 시간을 담담하게 비판적으로 숙고해 봐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역시, 우리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자유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금 깊이 새기는 6월 25일을 보내길 바랍니다.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