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시험서 터져 나오는 잡음
온라인으로 치러진 대학의 중간·기말고사에서 부정행위가 문제 되면서 온라인 시험 감독 시스템을 도입하는 대학들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온라인 교육, 평가,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렙㈜의 온라인 시험 감독 시스템. 웹캠과 휴대전화로 시험 보는 모습을 찍고, 감독자가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부정행위가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렙 제공
원격수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온라인 시험이다. 하지만 갑자기 적용된 원격수업이 그러하듯 온라인 시험 역시 잡음이 이어졌다. 올해 1학기를 대부분 원격수업으로 대체한 대학들은 시험도 온라인으로 치렀다. 부정행위가 속출했고, 대학마다 성적 처리 방식을 둘러싸고 진통이 한창이다. 중고교는 온라인 시험을 꿈도 못 꿨다. 내신이 입시와 직결돼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험은 이런 부정행위나 적용상 한계를 피할 수 없는 걸까. 공정성과 신뢰도 시비를 숙명처럼 안고갈 수밖에 없을까. 2학기에도 코로나19가 이어진다면 온라인 시험은 똑같은 문제를 일으킬까.
○ 갖가지 부정행위로 성적 신뢰도 하락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포브스지는 4월 미 전국대입시험연합 저널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인용해 “온라인 시험을 치르는 학생의 70%가 부정행위 성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대와 조지아주 조지아공대에서도 5월에 학생들이 온라인 시험을 보면서 ‘체그(Chegg)’라는 앱에 접속해 답을 찾은 사실이 적발됐다. 해당 앱은 한 달에 일정 비용을 내면 2100만여 개의 문제와 정답을 찾을 수 있다.
○ 내신 민감한 중고교는 실시 못해
고3이 몰아치는 시험으로 바쁜 건 교육부가 원칙적으로 평가는 대면을 통해 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신은 대입에 직결되는 만큼 온라인 시험이나 수행평가에서 부정행위가 생기면 문제가 커진다. 등교가 기약 없이 연기될 때도 교육부가 ‘지필고사는 등교 이후에 한다’고 고집한 이유다.
일부 수행평가는 온라인으로 하고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지만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다. 실시간 쌍방향 화상수업을 통해 교사가 학생이 직접 한 사실을 확인한 것만 가능하다. 서울 A고 교사는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예민해 대면수업 당시에도 누가 발표를 몇 번 했는지, 잘했는지를 기억해놨다가 성적이 나오면 이의 제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며 “그냥 온라인으로 제출하라고 하면 공정성 시비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지필고사는 시행하기가 더 어렵다. 각자 온라인으로 문제지를 내려받아 풀게 한 4월 24일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만점을 받았다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온라인으로 제공된 정답지를 보며 답을 체크한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코로나19에 걸리거나 의심증상, 자가 격리 등으로 중간고사를 못 보는 학생에게도 온라인 시험 기회는 없다. 그 대신 교육당국은 기말고사 성적으로 인정점을 부여하도록 했다.
○ ‘미래형 평가’로 진화시켜야
온라인 시험이 제대로 치러진다면 교육적으로 장점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학생들이 온라인으로 문제를 풀고 정답까지 제출해 관련 정보가 풍부하게 축적되면 교사가 학생에 대한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좋다. 해당 학생이 자주 틀리는 문제나 영역별 학습 정도를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은행과 연계하면 부족한 영역을 보완할 수 있는 문제를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도 있다.
문제는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가 준비 없이 원격수업을 시작하다 보니 온라인 시험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점이다. 시험 보는 환경이 달라진 만큼 평가 방법도 바뀌어야 하는데 장소만 옮겨 치르는 수준에 머문 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온라인 시험에서는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알고 있는 지식을 표현하고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느냐’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당장 코로나19 때문만이 아니라 앞으로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평가 방향이기도 하다.
대학의 경우 객관식이 필요한 일부 기초과목을 제외하고는 정답이 하나가 아닌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프로젝트 수준으로 저마다 정답이 다른 문제를 낼 경우 오픈북으로 해도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야 해 커닝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중간·기말고사 두 번의 시험이 아니라 ‘과정’을 평가하라는 제언도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부여해 안 내면 감점, 내용이 좋으면 가점을 주는 식으로 평가 방법을 달리하면 커닝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체들의 모니터링 시스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수험생의 안구 움직임을 확인해 부정행위 여부를 가려낼 정도다.
중고교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내신도 지필고사 위주보다는 학생의 성장 과정을 평가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향후 도입될 고교학점제에서 학생들이 선택 과목을 다양하게 고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방식이다. 자유학기제를 실시하는 중1에 적용 중인 과정중심평가가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평가가 활성화되려면 장기적으로 교사가 평가 전문성을 키워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 실시간 원격수업이 아니어도 학생의 학습 과정을 교사가 평가하고 학생부에 기재해줄 수 있도록 교육부가 원격수업 평가와 기록 가이드라인을 손질해야 한다.
물론 시험 응시자 스스로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다. 서울 B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부정행위 신고 창구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먼저 ‘온라인 시험도 정정당당하게 보겠다’는 학생 차원의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