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아이한 카디르 (한국이름 한준) 터키 출신 한국인·한국외대 국제학과 교수
터키에서 이름을 짓는 방법 중 하나는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 이름을 따서 지어주는 것이다. 맏손자나 맏손녀인 경우 특히 그렇다. 나도 맏손자라 부모님이 할아버지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본인이 당시만 해도 아직 젊은 편이라 할아버지 느낌이 안 든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새로운 이름을 고민하다가 ‘가치 있는 밤’을 뜻하는 ‘카디르의 밤’에 태어난 것을 생각했고 나는 ‘카디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나와 같은 날 태어난 터키 남성은 카디르, 여성은 카드 리예라는 이름이 많다. 이런 식으로 태어난 날과 관련 있는 이름이 많다. 바아르(봄), 바이람(명절) 등. 터키에서 가장 흔한 작명 문화 중에 하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이름을 따라 짓는 것이다. 무스타파 케말(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처럼.
나는 2년 전에 귀화할 때 한국 이름을 꼭 가지고 싶었다. 이제 한국인이니까 이름에도 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싶었다. 특히 나는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국제학회에 다니는 등 외국 활동을 할 때 ‘아이한 카디르’라는 터키 이름을 그대로 썼고, 터키 정체성만 드러났기 때문에 중간 이름으로 한국 이름을 추가하고 싶었다. 외자가 항상 멋지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짧고 영어 발음이 쉬운 한국 이름을 지으려 했다.
작명하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전혀 몰랐다. 작명을 위해 작명소에 가서 돈을 내고 사주가 좋은 이름으로 작명한다는 것은 듣기만 했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보편적이었는지, 작명 관련 연구소들, 수많은 블로그와 앱까지 있는 걸 경험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 교수님은 내게 선물하려고 자신이 아는 작명가에게 3가지 이름을 추천받아 나에게 전달해 줬다. 지금까지 받았던 선물 중 가장 부담스러운 선물이었다. 다른 선물은 안 받거나 돌려줄 수 있고, 아니면 받고서 사용하지 않아도 티가 안 나는데, 이름은 돌려드릴 수도 없고, 쓰지 않는 것도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교수님께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이름들을 거절했다.
성은 고민 없이 내 원래 성에서 ‘아이’를 빼 한국의 ‘한’으로 결정했다. 많은 고민 끝에 이름은 ‘준’으로 결정했다. 한자도 고민하다가 어떤 친구가 작명 앱을 통해 몇 가지 알려주고, 그중에 ‘물길이 통하다’의 뜻도 있고 교류의 의미도 있는 ‘깊을 준’을 추천했다. 흔한 한자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에 들었다. 내 인생도 터키에서 시작하고 뉴질랜드, 그 다음 한국으로 계속 물길을 통해 왔던 것 같아 내 인생의 요약처럼 느껴졌다. 앞으로도 물길을 통해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많은 교류에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으로도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알아보고 고민하고 ‘한준’이 되었다. 내 이름을 영어로 쓸 때 부모님이 지어준 ‘카디르’와 내 한국 정체성을 나타내는 ‘준’을 함께 사용한다. 이것 역시 내 이름도 나의 정체성처럼 서양과 동양을 조화롭게 혼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명에 대해 많이 생각한 결과 내린 개인적인 결론은 작명이란 이름으로 만드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름의 원래 뜻은 물론 있지만 그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에 많은 카디르가 있지만 내 이름 카디르에는 나한테 유일한 이야기가 있고, 세계에 많은 준이 있지만 내 이름 준에는 나한테 유일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한 카디르 (한국이름 한준) 터키 출신 한국인·한국외대 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