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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4기 70대 환자, 2년 동안 항암제 임상 시험 참여했는데…

입력 | 2020-06-26 17:01:00


홍민희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신약 개발에 관심이 많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항암제 임상시험에 많이 참여하는 의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임상시험 대상자가 된 환자는 연간 1억~2억 원의 진료비를 줄일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은 언제 개발될까. 어떤 제약사는 이미 임상 1상을 끝내고 2상에 돌입했다거나, 머잖아 임상 3상까지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놀라운 속도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이라 전 세계가 달려들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모든 신약의 개발 속도가 이처럼 ‘속전속결’은 아니다. 후보 물질이 신약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십수 년이 소요된다. 먼저 동물 실험을 거쳐야 하며 안전성이 입증되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이 진행된다. 임상 시험은 1~3상으로 나누는데, 신약으로 나오기 전의 최종 대규모 임상 시험이 3상이다.

항암제 임상 시험은 ‘효과 좋은 약’을 바라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희망’이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임상 시험에 적극 참여한다. 홍민희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41)도 그런 의사 중 한 명인데, 좀 유별난 편이다. 국내에서 시행되는 글로벌 폐암 치료제 임상 시험 모두에 참여하고 있는 것.

홍 교수는 매년 평균 110개 이상의 임상 시험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123개의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임상 3상이 44개로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홍 교수의 전공은 폐암. 당연히 폐암 임상 시험이 110개(89%)로 압도적으로 많다. 홍 교수가 임상 시험에 이토록 ‘집착’하는 까닭이 뭘까.

● “말기 암 환자에게 희망을”

폐암은 대체로 발견이 늦다. 위암이나 대장암, 유방암 같은 경우 90% 정도의 환자가 1기와 2기에 발견된다. 국가 암 검진 사업 등이 조기 발견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반면 폐암은 환자의 절반 정도가 4기에 발견된다. 폐암은 지난해 하반기에야 국가 암 검진 대상에 포함됐다.

말기에 해당하는 4기 폐암 환자는 대체로 수술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항암 치료가 중요해진다. 다만, 효과가 좋다는 항암제일수록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그림의 떡’인 면역항암제도 많다. 이럴 때 임상 시험을 활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16년 4월, 70대 남성이 홍 교수를 찾아왔다. 그 남성 또한 4기 폐암 환자. 효과가 좋다는 면역항암제는 워낙 고가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홍 교수는 환자에게 임상 시험 참여를 권했다. 임상 시험 대상자로서의 조건만 충족된다면 고가의 약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

환자는 동의했다. 그 후 2년 동안 임상 시험에 참여하며 무상으로 약을 공급받았다. 기적이라 해야 할까. 폐암 덩어리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홍 교수는 “모든 환자가 이렇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약제를 사용해 극적 효과를 보는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임상 시험은 길게는 5년 동안 이어진다. 참여 환자들은 약 외에도 영상 검사까지 무료로 받는다. 교통비를 ‘보너스’로 받기도 한다. 이 모든 비용을 합산할 경우 환자 1인당 연간 1억~2억 원의 진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가계 재정을 짓누르는 막대한 진료비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좋은 방법인 셈. 이런 점 때문에도 홍 교수는 환자들에게 임상 시험 참여를 권한다. 현재 홍 교수 환자의 30~40% 정도가 임상 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항암제를 단독으로 투여할 때와 병행 투여할 때 효과가 다를 수 있다. 그 결과를 알아보려면 임상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생각 외로 다양한 임상 시험이 진료 현장에서 진행된다는 뜻이다. 이런 임상 시험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마다 시행하는 임상 시험이 다르고, 그때그때 대상자의 조건이 다르다는 게 홍 교수의 설명이다. 주치의에게 직접 문의하는 게 좋다.

● “임상 시험이 잘돼야 의료 강국”

암 환자들은 효과가 좋다는 약 혹은 신약 후보 물질이 나오면 “꼭 임상 시험을 거쳐야 하나, 바로 투입할 수 없나”라고 묻는다. 그럴 수 없다는 게 홍 교수의 생각이다. 한두 명이 효과를 봤다 하더라도 그것은 ‘편견’일 수 있다는 것. 과학적인 근거를 객관적으로 찾아내고 정립하는 과정이 임상 시험이란 이야기다.

홍 교수가 종양내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신약 개발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수술을 할 수 없는 폐암 환자를 많이 봤다. 그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은 좋은 항암제라고 생각했다. 신약 개발에 집중하다 보니 잠시 병원을 떠나기도 했다. 2015년 글로벌 제약사에 취업해 신약 개발과 임상 시험 업무를 담당한 것. 1년 만에 병원의 요청으로 복귀했지만, 그 업무만큼은 놓지 않았다. 홍 교수는 지금 근무하는 세브란스병원에서도 항암제 임상 시험의 핵심 인력으로 꼽힌다.

과거에도 국내 의사들은 글로벌 제약사가 진행하는 임상 시험을 진행했었다. 다만 주도하지는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홍 교수는 “국내 의료진이 임상 시험의 디자인(설계) 작업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나중에 결과 데이터까지 직접 발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국내 제약사들의 글로벌 임상 시험도 적잖게 시행되고 있다. 한국 의료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 폐 건강 지키고 싶다면 ‘이렇게’ ▼

“폐 건강을 지키고 싶다고요? 그럼 딱 한 가지만 우선 실천하세요. 바로 금연입니다.”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걸 누가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민희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가장 확실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금연이 폐암은 물론이고 다른 폐 질환을 막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것.

홍 교수에 따르면 흡연자의 10% 정도는 폐암에 걸린다. 오래 담배를 피웠다면 이 확률은 20%로 높아진다. 금연해도 당장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금연하고 5년이 지나야 폐암 발병 위험이 줄어든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금연하고 15년이 지나야 폐암 발병 위험이 금연 이전보다 80~90% 떨어진다. 15년 이상 금연해도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은 사람보다 폐암 발병 비율은 여전히 10% 정도 높다.

이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간접흡연은 성인이 된 후 폐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많다. 흡연의 폐해는 이처럼 끈질기고 독하다.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금연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홍 교수는 “그 경우 현재 발생하는 폐암의 85% 이상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흡연력이 있는 경우 의사와 상의해서 정기적으로 폐 CT 검사를 할 것을 권했다.

금연이 대표적인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면 유산소 운동은 대표적인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홍 교수는 폐 건강을 위한 두 번째 조건으로 걷기와 달리기, 자전거타기, 수영 등 유산소 운동을 추천했다.

셋째, 홍 교수는 독감과 폐렴구균 예방 접종을 권했다. 예방 접종을 해 두면 100% 감염을 막지는 못하지만 감염되더라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는다는 것. 홍 교수는 65세 이상과 만성질환자, 면역이 떨어진 사람이라면 두 종류의 접종이 모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