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원생 100명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여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에 나섰다. 유치원 문이 휴원으로 닫혀있다. © News1
“우리는 재미있는 생각만 가지고 항상 신나고 싶습니다.”
26일 찾은 경기 안산 상록구에 있는 한 유치원 앞마당에는 원아들이 적은 글귀들이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이 유치원에선 최근 이른바 ‘햄버거병’(용혈성요독증후군·HUS) 의심 증상을 포함한 집단 식중독(장출혈성 대장균)이 발생했다. 평상시라면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끄러워야 할 원아 167명 규모의 유치원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현관에는 안산시에서 19일 발부한 일시폐쇄명령서가 붙어 있었다.
해당 유치원에서 시작된 집단 식중독의 유증상자는 26일에도 6명이 추가돼 지금까지 49명으로 늘어났다. 전날까진 식중독 환자로 분류됐던 원아 1명이 갑작스레 햄버거병 증세를 보여 햄버거병 의심 환자는 15명으로 늘었다. 이로써 A유치원 식중독 사태에 따른 입원 환자는 모두 23명(원아 20명, 원아 가족 어린이 3명). 전날까지 투석을 받던 원아 5명 가운데 1명은 증세가 호전돼 투석 치료를 중단했다.
집단 식중독의 피해가 커지면서 해당 유치원을 둘러싼 ‘늑장대응’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의심 증상을 발견한 보호자들이 등원 중지 등의 대처를 요구했지만, 유치원이 차일피일 미루며 사태를 키웠다는 주장이다. 구 관계자는 “보건소에 최초로 집단 식중독을 신고한 것도 사태를 미리 인지하고 있었던 유치원이 아닌 병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사태로 인해 신장투석을 받고 있는 아이의 큰아버지’라는 한 누리꾼은 25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카가 배출했다는 혈뇨와 배꼽 옆에 관을 꽂고 투석 중인 조카의 사진도 함께 첨부했다.
이 누리꾼은 “부모가 아이에게 증상이 발현되자마자 유치원에 알리고 모든 원아의 등원 중지를 요청했는데 유치원은 수일 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역학조사에 꼭 필요한데다가 교육시설이라면 일정 기간 보관 의무가 있는 식재료를 폐기한 데 대해 50만 원의 과태료만 부과한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호소했다.
상록구 보건소에 따르면 보건소는 16일 안산고대병원이 “한 유치원에서 여러 명의 원아가 같은 증상으로 입원했다”고 신고한 뒤 해당 유치원의 집단 식중독 사태를 알게 됐다. 보건소 관계자는 “해당 유치원이 직접 신고를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해당 유치원은 보건소가 사태를 인지했다는 것을 안 뒤에야 16일 오후 보호자들에게 “몇몇 원아들이 장염 증상으로 진료를 받게 됐다”고 공지했다. 동아일보는 적절한 조치가 해당 유치원의 박모 원장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안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안산=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