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패션은 훨씬 먼저 인스턴트 시대를 열었습니다.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직물이 가내수공업에서 공장 대량생산으로 바뀌고, 재봉틀의 발명으로 의류 또한 대량생산되면서 인스턴트 패션이 시작됐죠. 인스턴트 푸드가 아무리 인기 상한가여도 ‘집밥’은 아직도 존재하고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패션은 이제 집에서 만들지도 않을뿐더러 그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남은 것이 맞춤 양복점이죠. 트렌드가 딱딱한 정장에서 편안한 캐주얼룩으로 바뀌면서 인스턴트 패션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스턴트 패션의 인기는 단순히 의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패션의 범주에는 의류뿐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 등도 포함되기에 그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주기 위해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을 할 수도 있지만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발을 쓰기도 하지만 자칫 벗겨질까 봐 염려도 되죠. ‘붙임머리’는 언제든지 즉석에서 스타일을 바꿀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노출을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이 타투입니다. 역사적으로 타투는 호신용에서부터 액운을 물리치는 부적으로까지 사용됐지만 현재는 패션의 일부로 사랑을 받고 있죠. 하지만 타투 시술은 도로 물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연 헤나로 염색하는 타투나 스티커 형태의 인스턴트 타투가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스타일이 추구되고 개개인의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에 이러한 인스턴트 패션은 참 쓸모 있고 신통방통하기까지 합니다. 굳이 큰 결심을 할 필요도 없고 맘에 들지 않아도 큰 후회를 안 해도 되니까요. 무조건 소비만 하고 본다는 인스턴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지만 알고 보면 이러한 긍정적인 면들도 있답니다. 인스턴트 패션이 만들어내는 참 편하고도 멋진 세상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