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목소리’ 테너 김세일
슈만 가곡집 ‘시인의 사랑’ 발매

슈만 가곡의 특유한 서정을 정교한 해석으로 빚어낸 테너 김세일과 새 앨범 ‘시인의 사랑’(작은 사진). 목프로덕션 제공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부터 앨범을 특징짓는 가장 강렬한 인상은 가사 단어 하나하나에대한 천착, 스위스 시계 장인을 연상시키는 정밀한 세공(細工)이다. 연인이 부르던 노래를 회상하는 ‘그 짤막한 노래가 들려오네’에서 가수는 ‘가슴이 끊어지는(Brust zerspringen)’의 강세를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st―z의 ‘끊어지듯’ 강한 자음을 하나하나 새긴다. 첫 음 ‘h¨or(들려오네)’는 반주보다 미세하게 늦게 나온다. 현실을 잊고 싶은 주인공의 주저함까지 생생하게 공감하게 만드는 정교한 계산의 결과다.
김세일의 목소리는 ‘시인의 사랑’의 전설적인 해석자 중 한 사람이었던 독일 테너 페터 슈라이어를 연상시키지만 비강 안쪽으로 납작하게 접히는 공명이 더 적어 한층 듣기 편하다.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 ‘오래되고 몹쓸 노래들’처럼 반주부의 강타가 함께하는 노래들도 좋지만, 특히 ‘그 짤막한 노래가 들려오네’ ‘매 밤마다 꿈속에서 그대를 봤네’ 같은 나지막한 노래들이 전해주는 품격은 이 곡의 역대 베스트 리코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이 가곡집 거의 끝에 이르러 나오는 ‘매 밤마다 꿈속에서 그대를 봤네’는 마치 연인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듯한 다정한 멜로디다. 그러나 가사는 떠나간 애인을 꿈에서 만났다가 잠을 깬 뒤의 아쉬움을 노래한다. 김세일이 정교하게 표현한 그 가사와 선율의 낙차(落差)가 마치 듣는 사람이 실제 실연당한 듯 만드는 바람에 휴일 여름 아침의 거실을 한동안 상실감에 빠져 빙빙 돌았다.
이 가곡집의 원시(原詩)인 하이네 시의 아이러니와 풍자를 꿰뚫은 음악 칼럼니스트 나성인의 해설도 주의 깊게 읽어볼 만하다. 앨범에는 ‘시인의 사랑’ 외 ‘리더크라이스’ 작품 24 전곡, ‘헌정’ ‘두 사람의 척탄병’ ‘그대는 꽃같이’ 등 슈만의 대표 가곡들과 슈만이 애초 ‘시인의 사랑’에 넣었다가 뒤에 뺀 네 곡이 함께 실렸다.
김세일은 10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음반 발매기념 ‘시인의 사랑’ 리사이틀을 연다. 5월 음반 발매와 맞춰 리사이틀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음반 발매와 공연이 모두 늦춰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