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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소독제가 가습기살균제 둔갑…4년간 대학병원서 사용”

입력 | 2020-06-29 12:31:00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이하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들이 29일 서울 중구 사참위 회의실에서 한 대학병원의 식기살균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상용한 것과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6.29/뉴스1 © News1


한 대학병원에서 식기 소독제를 가습기살균제로 4년간 사용한 사례가 확인됐다. 식품위생법상 가습기 살균, 소독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제품인 ‘하이크로정’을 한 식약품 도매업체가 가습기살균제로 둔갑시켜 병원에 유통한 의혹을 받는다.

29일 오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서울시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대학병원에서 2007년 2월부터 2011년 6월까지 4년4개월간 가습기살균제로 둔갑된 식기소독제 ‘하이크로정’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이크로정은 이염화이소시아뉼산나트륨(NaDCC)으로 흡입독성이 확인된 물질이며 반복흡입노출에 의한 조직병리학적 검사 결과 폐에서 독성 변화가 관찰된 바 있다. 이로 인해 2015년 1월 유독물질 및 제한물질, 금지 물질의 지정에 따라 유독물질로 지정됐다.

하이크로정이 해당 병원에서 사용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해준 제보자는 사망했지만 제보자가 하이크로정 사용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아울러 해당 기간 동안 병원에서 DaDCC를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다른 피해자 또한 현재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다.

사참위는 “피해자 전수조사를 위해 해당 병원과 기술원 등에 개인 의료기록을 받아보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며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참위에 의하면 현재까지 NaDCC를 주성분으로 하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은 ‘엔위드(N-with)’와 ‘세균닥터’이며 이 중 엔위드로 인해 건강피해를 입었다고 환경부에 신고한 사람은 93명이다. 아울러 엔위드와 함께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품을 함께 사용한 5명은 폐질환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번 사참위 조사로 NaDCC를 사용한 제품이 추가로 한 개 더 확인됐으며 이에 대한 피해 규모에 대해 역학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참위는 “하이크로정은 식품위생법상 가습기 살균·소독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제품”이라며 “제품업체는 하이크로정을 2003년에 ‘혼합제제식품첨가물’로 출시하고 2009년에 ‘기구 등의 살균소독제’로 품목을 변경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참위 조사 결과 해당 업체는 임상자료를 이름만 바꿔서 허위로 B 병원에 전달했고 B 병원은 이를 입찰해 자체 규정인 감염관리지침서에 적시하며 4년 넘게 사용했다. 당시 식품첨가물의 용도에 대해 허위표시나 과대 광고를 할 경우에는 식품위생법으로 행정제재 대상이지만 사참위 확인 결과 식약처는 A 의약품 도매업체가 허위광고한 가습기살균제에 대해서 제재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업체의 거짓 광고에 대해 병원 측과 식약처 측에서 별도의 심사기준 없이 통과시킨 셈이다.

사참위에 따르면 A 의약품 도매업체는 하이크로정이 ‘가습기 안에 세균과 실내공기, 살균, 소독 목적으로 개발된 제품’이라는 허위문구를 기재한 제품설명서를 작성했다. 이에 B 병원은 A 업체와 정식계약을 체결했고 ‘가습기 하이클’라는 이름으로 3만7400정을 병원에 공급했다.

B 병원은 400병상 이상의 큰 대학병원으로 현재 코로나 집중 치료병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A 업체는 사참위에 ‘당시에 NaDCC 세정제가 가습기살균제로 많이 팔리고 있어서 우리도 그렇게 팔 수 있을 것 같아서 임의로 (하이크로정 설명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업체는 가습기살균제로 둔갑시킨 하이크로정을 B 병원에만 유통했다고 주장했지만 전수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A 업체나 B 병원의 경우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는 행정처분 시효가 넘어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수조사를 통해 하이크로정으로 인해 폐질환 등에 걸린 피해자를 발견했다면 과실치상과 과실치사 등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참위 관계자는 “(NaDCC로 인해) 사망이 확인되면 당연히 공소시효 여부등과 따져서 사법적인거 따져야할 부분” “현재로서는 병원에서 (NaDCC를) 사용한 게 확인됐지만 피해자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인하기 어려우니 정부당국에서 그로 인한 피해자 여부, 더 나아가 사법적 책임 물을수 있는 일괄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예용 가습기살균제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 위원장은 “병원에서 식기소독제가 가습기살균제로 둔갑된 지 모른채 ‘감염관리지침서’에 따라 오랜 기간 잘못 사용된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며 “보건복지지부 등 관련 정부기관은 혹시라도 과거에 유사 사례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병원의 감염관리지침을 전수 조사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