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확대해 한국 등을 참여시키는 미국의 구상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최근 군함도 등 23개 산업유산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며 국제사회에 했던 약속을 어기고 역사 왜곡에 나선 데 이어 G7 참여 반대까지 잇따라 한국에 뒤통수를 때리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한국의 친북 및 친중 태도를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제 사회 내 일본의 위상 하락과 한국의 영향력 확대에 따른 과거사 문제 제기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아베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와 정치 스캔들로 인한 지지율 급락을 만회하기 위해 ‘혐한 정치’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응을 자제하던 청와대는 29일 “몰염치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 해결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면서 역사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G7 참여 반대는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한국 때리기’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日, 韓 외교적 영향력 강화 견제…아베, 정치적 위기 타개 속내
신문은 일본이 북한과 중국에 대한 한국의 외교 정책이 G7과 다르다고 우려하며 기존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고 미국에 요구했다고 전했다. 또 일본이 한국의 G7 참여에 반대하는 것은 현재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G7에 참여하고 있다는 외교적 우위를 지킨다는 의도와 함께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의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G7 참가국 확대와 관련해 사실 관계 확인을 거부한 채 G7 체제 유지를 강조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9일 기자회견에서 “G7 틀을 유지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NHK가 전했다. 스가 장관은 최종 개최 형식은 미국이 조정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앞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 역시 NHK 방송의 일요토론에서 “G7의 틀 자체는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은 반대 이유로 한국 정부의 친북, 친중국 성향을 문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G7 확대를 주장한 배경에는 중국 견제 전략이 포함돼 있는 만큼 한국 참여시 미국의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데 이어 대표적인 선진국 클럽에 참여할 경우 일본의 입지가 좁아질 것을 일본이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역시 C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한국이 아시아 국가에서 두 번째로 G7에 들어가면 한국의 발언력이 굉장히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며 “한일 간 여러 가지 문제가 놓여 있는데 한국의 발언력이 강화돼 일본이 역사 문제나 강제징용 판결, 위안부 문제 등에서 밀리기 시작될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아베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 정치 비리 등으로 약화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혐한’ 정치에 시동을 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국이 들어가면 국제적으로 일본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것을 보여줘 아베 정권 만이 아닌 경우에 따라 자민당 집권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서 일본 보수나 아베 정권이 경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아베 내각이 G7 확대 계획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아시아 종주국’ 위상을 뺏기지 않으려는 시도를 넘어 방역 실패, 연이은 정치 비리 등으로 인해 낮아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국내용 혐한정치’이자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하수정치”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언론 보도라는 점에서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 들어 청와대에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며 일본을 정면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뉴시스와 통화에서 “일본이 그렇게 우리 나라에 피해를 주고 이런 방식으로 또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일본의 몰염치한 태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본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한지 1년이 다가오고 있다”면서 “이러한 점을 국제사회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G7 참여를 반대하는 일본의 입장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일본에 경고장을 날린 것은 스가 관방장관이 G7 체제 유지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물론 WTO 제소 절차 재개에 상응해 한국 때리기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일본이 G7 참여 반대에 그치지 않고 WTO 사무총장 선거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며 일본의 행보에 제동을 걸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선 최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출마를 견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닛케이)은 지난 24일 “유 본부장은 일본의 대(對)한 수출관리 엄격화에 반발하고 있어 한일 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하며 대일 공세 강화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이영채 교수는 “일본의 대외 전략은 국제질서에서 일본 위상을 강화하고, 현재의 자유무역질서보다는 미중 대립구조 속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한국이 WTO 사무총장을 내면 현재 한일관계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이 국제 무역질서를 새롭게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G7보다 훨씬 강력하게 저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日, 韓 위상 강화에 사사건건 딴지…美 결정 주목
그간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강화를 꾸준히 견제해 왔다. 지난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안전보장이사회 15개국 가운데 일본이 막판까지 반대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일본은 지난 2018년 남·북·미 대화 국면에서도 한국의 역할 확대에 경계감을 드러냈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믿지 말라”고 전했다며,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타결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종적인 판단을 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G7 정상회의 의장을 맡고 있으며, 다른 회원국의 반대가 없으면 원하는 나라를 의결권이 없는 옵서버 자격으로 일시 초청할 수 있다. 일본 역시 일회적으로 참석하는 데는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본은 물론 영국과 캐나다 역시 G7 확대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장기적으로 트럼프의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는 G7 확대 대상국으로 거론된 러시아를 향해 ‘국제사회 규칙과 규범을 무시하고 있다’며 참여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G7이 낡은 체제로서 현재의 국제정세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G11 이나 G12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G7 체제의 전환에 공감한다”며 기꺼이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G7에 한 번 가는 초청은 옵서버 자격으로 의장국이 할 수 있다”며 “다만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문제는 G7 모든 나라의 협의와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우리로서는 초청 받은 만큼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