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의 외교 수장이라는 송영길의 막말 외국에서 자기를 어떻게 볼지 생각해보라
이승헌 정치부장
북한이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자 당시 외통위 회의를 주재하던 송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대)포로 폭파 안 한 게 어디냐”고 했다. 그러더니 백인 경찰에게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까지 거론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북한의 상황, 제재가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백인 경찰이고, 북한이 억울한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필자는 송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처음엔 화가 났고 나중엔 겁이 났다. 대한민국 외교안보 이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통위원장이 어떤 자리인 줄 알면 이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포 발언의 저열함은 차치하더라도, 플로이드 발언은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을 사분오열시켰던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를 맥락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북-미 관계에 갖다 붙인 것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 요청 발언은 북핵과 관련해 국제 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유엔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모른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자연히 외국에서도 보는 눈이 많다. 특히 미국에선 워낙 거물들이 상·하원 외교위원장을 거쳐 가서 외통위원장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낸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이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대표적 정치 거물 중 한 명. 그렇다 보니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 주한외교 사절들이 국회에 할 말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도 외통위원장이다.
송 위원장이 민감한 외교 이슈에 대해 외통위원장 무게에 걸맞지 않은 말을 하고 다니는 건 개인 자질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미국 때리기가 놀이처럼 일상화된 여권 내 분위기도 더해졌다고 필자는 본다. 86운동권 세대가 중진이 된 민주당에서 1980년대 운동권 사고방식과 문화는 이제 보편적이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고 김근태 의장 등 오리지널 민주화 세대가 한 축이어서 한미동맹에 대한 인식이 80년대 운동권처럼 천편일률적이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다른 말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아무리 슈퍼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자기들 세상인 듯해도 국익을 생각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송영길 국회 외통위원장은 지금이라도 자기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는지,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