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기권 표결로 당에서 ‘경고’ 징계를 받은 금태섭 전 의원. 그는 29일 “국회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한 표결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반하는 일”이라고 했다.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민주당의 징계에 절차적, 논리적 흠결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파시즘 아니냐’고 하더라.”(민주당 청년 정치인 B 씨)
최근 정치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윤리심판원의 금 전 의원에 대한 ‘경고’ 조치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본회의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진 금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막는 반헌법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이해찬 대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납득하지 못한 금 전 의원은 재심을 신청해 29일 윤리심판원의 재심에 출석했지만 당내에선 결론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A 의원의 말이 생각나 통합당 당규에서 징계 사유를 찾아봤다.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 4가지 사유가 나와 있지만 민주당처럼 당론을 어겼다고 징계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금 전 의원의 징계에는 또 한 가지 오류가 있다. 민주당 당규 14조 1항에는 당원과 당직자에 대한 징계 사유가 적시돼 있고 14조 2항엔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 사유가 구분돼 있다.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금 전 의원에게는 14조 2항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14조 2항에 적시된 징계 사유에는 직권 남용 및 이권 개입, 자신 및 배우자의 민법상 친인척 보좌진 채용 등 6가지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리심판원은 14조 1항에 적시된 ‘당의 강령이나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를 금 전 의원에게 적용했다. 의원도 당원에 포함되지만 당론 위반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 고무줄 잣대가 될 수 있다. 자의적 법규 적용을 배제하기 위한 형법상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친문 지지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봐서 자의적 징계를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금 전 의원에 대한 표적 공천 논란이 있었고 경선에서 떨어진 그에게 20대 국회 임기 종료 이틀 전 징계 처분을 내린 것도 그런 평가에 힘을 싣고 있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 건강한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총선 이후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 균형이 깨지면서 내부의 견제심리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당 징계가 부당하다고 외친 이들은 조응천 박용진 의원과 김해영 최고위원 등에 불과했다. 야당 시절 걸핏하면 돌렸던 연판장이나 탄원서도 등장하지 않았고 ‘새 정치’의 기대를 모았던 초선들은 입도 뻥긋 안 하고 있다.
B 씨가 전한 청년들의 우려처럼 민주당에 ‘민주’는 사라지고 오히려 파시즘의 기운이 횡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은 8월 29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위원장 안규백)를 가동 중이다. 전당대회와 관련된 당헌당규 개정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반헌법적 당규를 개정하는 게 먼저다. 이 대표의 주장대로 금 전 의원 징계가 마땅하다면 징계 사유에 ‘의원이 당론 표결을 거부할 때’를 집어넣는 게 공당다운 태도일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