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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징계 당규부터 고쳐라[여의도 25시/황형준]

입력 | 2020-06-30 03:00:00


공수처법 기권 표결로 당에서 ‘경고’ 징계를 받은 금태섭 전 의원. 그는 29일 “국회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한 표결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반하는 일”이라고 했다. 동아일보DB

황형준 정치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후 초선 의원들을 향해 낸 첫 번째 메시지가 금태섭 전 의원 징계였다. 개별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미래통합당이 민주적이다.”(통합당 초선 A 의원)

“민주당의 징계에 절차적, 논리적 흠결은 없었다. 하지만 같은 세대의 친구들은 ‘파시즘 아니냐’고 하더라.”(민주당 청년 정치인 B 씨)

최근 정치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윤리심판원의 금 전 의원에 대한 ‘경고’ 조치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본회의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중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진 금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직무 수행을 막는 반헌법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이해찬 대표는 “강제 당론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납득하지 못한 금 전 의원은 재심을 신청해 29일 윤리심판원의 재심에 출석했지만 당내에선 결론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윤리심판원은 당규 14조 1항에 규정된 ‘당의 강령이나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에 따라 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다수의 결정에 따르되 소수 의견도 존중한다는 것이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도 다수결로 판결과 결정을 내리지만 ‘소수 의견’을 기록으로 남긴다. 헌법 제46조도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의원에게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을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 전 의원도 재심신청서에서 “법안 처리 과정에서 중앙당 윤리심판원이 당론 법안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의원에 대해 징계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A 의원의 말이 생각나 통합당 당규에서 징계 사유를 찾아봤다.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 4가지 사유가 나와 있지만 민주당처럼 당론을 어겼다고 징계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금 전 의원의 징계에는 또 한 가지 오류가 있다. 민주당 당규 14조 1항에는 당원과 당직자에 대한 징계 사유가 적시돼 있고 14조 2항엔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 사유가 구분돼 있다.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금 전 의원에게는 14조 2항이 우선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14조 2항에 적시된 징계 사유에는 직권 남용 및 이권 개입, 자신 및 배우자의 민법상 친인척 보좌진 채용 등 6가지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리심판원은 14조 1항에 적시된 ‘당의 강령이나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를 금 전 의원에게 적용했다. 의원도 당원에 포함되지만 당론 위반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 고무줄 잣대가 될 수 있다. 자의적 법규 적용을 배제하기 위한 형법상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는 친문 지지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봐서 자의적 징계를 내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금 전 의원에 대한 표적 공천 논란이 있었고 경선에서 떨어진 그에게 20대 국회 임기 종료 이틀 전 징계 처분을 내린 것도 그런 평가에 힘을 싣고 있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 건강한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점도 문제다. 총선 이후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 균형이 깨지면서 내부의 견제심리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당 징계가 부당하다고 외친 이들은 조응천 박용진 의원과 김해영 최고위원 등에 불과했다. 야당 시절 걸핏하면 돌렸던 연판장이나 탄원서도 등장하지 않았고 ‘새 정치’의 기대를 모았던 초선들은 입도 뻥긋 안 하고 있다.

B 씨가 전한 청년들의 우려처럼 민주당에 ‘민주’는 사라지고 오히려 파시즘의 기운이 횡행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은 8월 29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위원장 안규백)를 가동 중이다. 전당대회와 관련된 당헌당규 개정이 화두가 되고 있지만 반헌법적 당규를 개정하는 게 먼저다. 이 대표의 주장대로 금 전 의원 징계가 마땅하다면 징계 사유에 ‘의원이 당론 표결을 거부할 때’를 집어넣는 게 공당다운 태도일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