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불안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중학교 3학년 아이였다. 아이는 어릴 때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공부도 잘해서 부모도 나름대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적이 확 떨어지고 공부를 너무 안 했다.
내가 아이에게 “너는 공부를 안 하니까 편하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자신도 괴롭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안 하느냐고 물으니, 아이는 “제가 열심히 하면요, 부모님이 또 기대하시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면 자신도 미안하고, 부모님도 실망하니까 아예 공부를 안 한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가 불안해서 공부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불안은 공부의 가장 큰 적이다. 인간은 익숙한 것, 잘하는 것, 많이 아는 것, 예측 가능한 것에는 덜 불안하다. 이에 비해 안 해본 것, 익숙하지 않은 것, 평가받는 상황, 예측이 안 되는 상황, 실패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불안하다. 불안이 심한 사람은 새로운 것, 실패할 것 같은 것, 평가받는 것에 훨씬 많이 불안해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춘 것이 바로 공부다. 그렇다고 불안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적당한 불안은 사람을 적당히 긴장시키고 대비할 수 있게 하므로 효율을 높인다. 수능 같은 시험을 앞두고는 평소보다 긴장도 되고 약간 불안해져야, 그 불안으로 인해 대비를 할 수도 있다.
왜 불안이 높아질까? 아이에게 불안을 유발하는 요소는 상당히 많다. 부모가 자주 싸우거나 부모와 아이 관계가 좋지 않아도 아이는 불안할 수 있다. 자주 혼내거나 너무 엄하게 대해도 그렇다. 부모가 자신이 아니라 형이나 누나 등 손위 형제한테 그럴 경우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또 부모가 잘하는 아이의 기준을 자주 얘기해도 다른 아이와 비교한다고 생각해 불안해질 수 있다. 불안이 높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면, 용기를 얻고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포기해 버리기도 한다. 어차피 노력해봤자 안 되기 때문에 애초에 시작도 안 하기도 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불안한 아이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엄마는 너 공부 못해도 돼.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는 말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이 아이들의 문제는 머릿속에 ‘All or None’, 100이 아니면 0이라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잘하는 것은 제법 해내지만, 잘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은 것은 안 하려 한다.
어떻게 아이의 불안을 다뤄줘야 할까? 우선 아이가 자신의 불안을 자극하는 정체에 직면하게 해야 한다. 왜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알게 하고 그 감정을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불안은 직면하기만 해도 좀 줄어든다. 공부를 못해서 혼날까 봐 불안해하는 아이도 있고, 자신이 그런 평가를 받는 게 창피해서 불안해하는 아이도 있고, 정말로 혼이 나서 불안해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공부에 있어 너무 불안해하면 부모가 무의식중에 결과나 성취를 강요하지 않았는지,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혼내지 않았는지, 아이의 성취 결과에 부모가 부끄러워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그럴 경우 부모의 행동을 약간만 수정해도 아이의 불안이 줄어든다.
시험 불안이 있는 아이라면 집에서 시험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교복도 입고, 엄마가 교사처럼 시험지를 나눠주고 시험 시작 벨소리와 비슷한 벨소리도 준비한다.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을까 싶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나아진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