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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법원, 낙태금지법 위헌 판결…트럼프 핵심이슈 잇단 제동

입력 | 2020-06-30 10:23:00

낙태 시술 요건 엄격하게 한 루이지애나주법 '위헌'
美 헌법서 보장한 여성의 낙태할 권리 실질적 침해
보수 성향 로버츠 대법원장 잇단 진보판결 주목




 미국 연방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5대 4로 낙태권 옹호자의 손을 들어줬다. 낙태 시술을 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엄격히 제한한 루이지애나주(州)의 ‘안전하지 못한 낙태 방지법(Unsafe Abortion Protection Act)’은 헌법상 부여된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29일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연방대법원 대법관 구성이 보수 5명과 진보 4명으로 이뤄진 상황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보수 성향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여전히 낙태 제한을 지지한다면서도 지난 2016년 유사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며 진보 대법관 4명의 손을 들어줬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2016년 낙태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한 텍사스주(州) 법률(Whole Woman’s Health v. Hellerstedt)에 대해 건강상 유의미한 효과가 없고 낙태할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면서 위헌 판결을 한 바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당시 판결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심리에서 과거 텍사스주 법률에 대한 판결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to treat like cases alike)’라는 법 원칙을 고려할 때 이를 뒤집을 특별한 사정이 없다며 찬성표를 던졌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결과적으로 불법 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제도(DACA·다카) 폐지, 인구조사(Census) 설문 문항에 시민권 유무 포함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현안에 잇따라 제동을 거는 모양새가 됐다. 이는 그의 성향과 별개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설명했다.

루이지애나주의 안전하지 못한 낙태금지법은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들에게 인근 30마일(약 48㎞) 이내 병원에 대해 ‘환자 이송·입원 특권(admitting privilege)’을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루이지애나주에서는 현재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 5명 중 단 2명만 환자 이송·입원 특권을 갖고 있다. 그나마 1명은 법 시행시 시술 불가를 선언한 상태다.

이 법 제정을 주도한 주의회 공화당 의원들은 낙태 환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낙태 찬성론자들은 이 법이 여성의 낙태 접근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효력 발생이 중단된 이 법이 시행되면 루이지내아주에서는 낙태 시술이 가능한 병원이 한 곳으로 줄어든다.

소송 원고인 ‘호프 클리닉(hope clinic)’은 최근 23년간 낙태 시술을 받은 7만명 중 4명만 인근 ‘병원(hospital)’으로 이송됐을 정도로 합병증이 적다고 주장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텍사스주 법률에 대한 판결은 잘못된 결정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과거 판결이 맞느냐 틀리느냐가 아니라, 과거 판례를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고 강조했다.

찬성표를 던진 진보 성향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이 법이 시행되면 낙태 시술을 받기 위해 차를 타고 20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커다란 부담”이라며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에게 (배우자에게 낙태 사실을 고지하는 것조차 위헌이라고 판결한) 1992년 연방대법원 판결(Planned Parenthood v. Casey)을 통해 인정된 헌법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진보 대법관은 모두 브레이어 대법관의 의견에 동의했다.

반면 보수 성향 새뮤얼 엘리토 대법관은 “안전하지 못한 낙태를 금지하는 법은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며 “환자 이송·입원 특권을 취득하도록 한 요건은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는 의사의 능력을 보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소수 의견을 냈다.

그는 “소송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이 아닌 낙태 시술을 제공하는 이들에 의해 제기돼 절차적 흠결이 있다”면서 “낙태 시술 제공자들은 어떠한 규제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장을 제외한 보수 대법관 4명은 같은 의견을 냈다.

백악관은 강하게 반발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대법원이 모든 낙태 시술 절차가 인근 병원에서 환자 이송·입원 특권을 인정 받는 개인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는 루이지애나주 정책을 파기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을 모두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공화당 소속 루이지애나주 검찰총장 제프 랜드리도 성명을 내어 “산모와 태아의 건강과 안전 보다 낙태 접근권을 우선시하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고 힐난했다. 그는 로버츠 대법원장이 정치적 결정을 했다면서 판례는 정의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공화당은 연방대법원 과반이 보수 성향 대법관으로 채워지자 1973년 낙태를 합법화한 연방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기회를 노려왔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에서 낙태권이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미국에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률은 폐지됐다.

하지만 공화당과 낙태 반대 단체는 사실상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연방대법원에서 이 법의 효력을 따지는 과정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고 시도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이와 같은 노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