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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쏠수있는 소형 로켓이 목표… 택시처럼 대중화될것”

입력 | 2020-07-01 03:00:00

[미래 개척하는 청년창업가들]<18> 페리지 신동윤 대표




최근 대전 페리지 사옥에서 만난 신동윤 대표는 “소형 발사체 시장이 활성화되면 마치 택시나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주로 사람과 인공위성이 오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장승윤 기자tomato99@donga.com

대전 유성구 KAIST 인근의 한 사무실로 들어가니 20대 초반의 학생과 50대 남성, 인도에서 온 외국인 엔지니어 등이 모니터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쪽의 칠판에는 복잡한 수식이 가득했고, 곳곳에 놓인 엔진 모형은 실리콘밸리의 기업에 온 듯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신동윤 페리지 대표(23)는 “고등학생부터 대기업에서 스마트폰을 개발한 엔지니어까지 로켓에 빠진 35명이 페리지에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리지는 2016년 설립된 우주항공 분야 스타트업이다. 하늘을 넘어 우주로 날아갈 발사체(위성을 특정 궤도에 진입시키는 로켓)를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KAIST는 페리지의 기술력과 가능성을 보고 2018년부터 교내에 ‘KAIST-페리지 로켓 연구센터’를 설립해 로켓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페리지는 2018년부터 삼성벤처투자, LB인베스트먼트 등 국내외 벤처투자업계로부터 투자금 100억 원 이상을 유치했다.

페리지를 창업한 신 대표는 KAIST 우주항공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로켓 발사에 성공한 후 9번의 로켓 발사 경험이 있다. 신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한 후에도 한국의 로켓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려 주말에 잠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다 가기도 했다”며 “3년간 함께 로켓을 만든 친구들과 ‘로켓으로 밥벌이를 해보자’는 생각에 2016년 법인을 세웠고, 2017년 KAIST 입학을 계기로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페리지 발사체는 기존 우주업계가 만들어온 발사체와는 다른 점이 있다. 지금껏 글로벌 발사체 시장이 대형 로켓 위주였다면 페리지는 초소형 분야에 특화했다. 발사체 무게가 2t 미만이고, 여기에 탑재할 인공위성은 50kg을 넘지 않는다. 이륙 중량만 100t에 달하는 나로호나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의 팰컨9 FT가 20t인 것에 비하면 페리지 발사체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신 대표는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인공위성의 데이터 처리 기술이 향상되면서 발사체를 작게 만드는 것이 우주업계의 화두라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휴대전화 카메라 기능이 발달하면서 굳이 전문가용 카메라를 찾지 않는 것처럼 이전의 고성능 인공위성이 제공하는 간헐적 데이터보다 저궤도에서 수백 대의 인공위성이 쏘는 실시간 데이터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형 인공위성을 언제든 우주로 배송할 수 있게 하는 게 페리지 발사체의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소형 인공위성을 통한 인터넷망 구축, 실시간 지도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페리지는 내년 여름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첫 발사체인 ‘블루 웨일 1호’를 발사할 계획이다. 페리지의 블루 웨일 1호는 국내 민간 우주업체로는 최초로 쏘게 될 발사체다. 호주 남부를 택한 이유는 인도양 방면으로 비행기가 거의 날지 않아 충돌 사고 위험이 낮고, 인공위성 사업을 국가 전략 사업으로 키우려는 호주 정부의 이해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난관이 있었다. 호주 환경당국이 빼어난 자연 환경을 자랑하는 애들레이드 지역에 발사장이 들어서면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우려했다. 페리지는 친환경 전략으로 호주 정부를 설득했다. 신 대표는 “앞으로 초소형 발사체를 지속적으로 발사할 계획인 만큼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기존에 쓰던 등유 연료가 아닌 친환경 소재인 매탄을 사용하고, 기체 부품 역시 알루미늄이 아닌 바다에서 3년이면 분해 가능한 탄소섬유를 쓴다는 점을 들어 호주 정부의 동의를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앞으로 변화할 우주 시장의 모습을 버스와 택시에 비유했다. 이제까지는 인공위성을 싣기 위해 대형 발사체만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소형 발사체 시장의 활성화로 언제든 미리 호출하면 인공위성을 나를 수 있게 됐다. 일정 수 이상의 승객을 모아 관광버스를 대절하는 방식이 아닌 플랫폼 택시가 대중화되는 것처럼 우주 시장도 변할 거라는 전망이다. 신 대표는 “정기 노선을 취항하는 항공사가 등장하면서 비행기는 누구나 이용하는 이동수단이 됐다”며 “발사체 시장도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