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서 도입된 수사심의위 기소 과정에 시민전문가 참여시켜 불필요한 시비 벗어나자는 것 삼성 합병 불기소 권고 존중이 향후 수사심의위 활성화의 관건
송평인 논설위원
재판 이전에 기소 여부가 재판 이상으로 피의자의 이해를 좌우한다. 법원의 재판배심 도입에 맞춰 검찰도 기소배심을 도입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2018년에 와서야 수사심의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기소배심에 접근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검찰의 편의(便宜)적 불기소는 법원에 하는 재정신청으로 통제할 수 있었으나 검찰의 편의적 기소를 통제하는 장치는 수사심의위에 의해 처음으로 마련됐다.
법원의 판결마저도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세상이다. 나는 이를 정치적 감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며 굳이 부정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날 대안을 찾지 않으면 사법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그 대안이 형사배심제도를 확대해 시민을 재판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검찰의 기소나 불기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훨씬 오래전부터 숱한 시비가 일었다. 2년 전 수사심의위의 도입은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다.
최근 8번째 수사심의위가 소집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대한 검찰 수사의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합병 과정이란 게 워낙 복잡해서 그 과정을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친여적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고 그 수사 내용을 친여적 매체가 피의사실 유포에 가까울 정도로 보도하는 방식으로 불법이 있는 듯한 예단을 조성한다는 인상은 받았다. 검찰과 삼성 측의 견해를 고루 듣고 내린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그 예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여권에서 즉각 수사심의위 결정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왔다. 박주민 의원과 박용진 의원은 다짜고짜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도 없다. 재벌이니까 불기소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노웅래 의원은 “수사심의위의 첫 번째 수혜자가 이재용 부회장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팩트도 틀렸다. 앞서 7번의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로 무혐의 처분 혜택을 받은 피의자들이 있다. 홍익표 의원은 수사심의위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걸 문제 삼았다. 트집이다. 수사심의위 명단이 공개되고 신상털이가 일어날 우려가 생기면 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부실 수사의 책임을 지워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겠다는 이상한 방향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것이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검찰개혁의 한 방안으로 보고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시행했다. 여당도 입만 열면 검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소하면 이쪽에서 매도당하고 불기소하면 저쪽에서 매도당할 바에야 차라리 시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를 만들어 판단을 맡겨 보자고 도입한 것이 수사심의위다. 여당의 반발에 굴복해 검찰이 기소한다면 그거야말로 수사심의위 도입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다. 하지만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한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하려면 유죄를 받아낼 더 높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무려 1년 7개월이나 수사했으니 면피성 기소라도 해야겠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다. 1년 7개월 수사를 하고도 접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시민을 존중하는 태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