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동생 리셴양 싱가포르민간항공국 회장(왼쪽)이 6월 24일 싱가포르에서 전진싱가포르당(PSP) 후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그는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은 아버지가 만든 당이 아니다”라며 정치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싱가포르=AP 뉴시스
이설 국제부 기자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해 1959년 자치정부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후 26년간 총리로 재직하며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끌었다. 1965년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퇴임한 1990년 30배 이상인 1만2759달러로 늘었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정치적으로는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해 왔다. PAP 의석은 1959년 이래 80석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반면 야당인 노동당(WP)은 2011년 6석을 차지한 것이 최고 기록이다. 아랍에미리트 일간 내셔널은 “싱가포르는 다인종 국가로서 빠른 경제성장을 이뤄야 했다”며 “번영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관용을 허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리콴유는 2남 1녀를 뒀다. 장남 리셴룽(李顯龍) 총리, 장녀 리웨이링(李瑋玲) 국립신경과학연구소 자문, 차남 리셴양 싱가포르민간항공국 회장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친하지 않았지만 갈등도 없었던’ 이들의 관계는 아버지 생가 처분 문제를 놓고 틀어졌다. 리셴룽 총리가 ‘집을 허물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따르지 않고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자 동생들이 이에 격렬히 반발한 것. 리웨이링과 리셴양은 2017년 성명을 내고 “리 총리가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남용하고 있다. 아버지를 우상화해 ‘리콴유 왕조’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아들 리훙이(李鴻毅)에게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갈등은 7월 10일 예정된 싱가포르 총선을 앞두고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리셴양은 6월 24일 전진싱가포르당(PSP) 입당을 발표했다. PSP는 반정부 인사인 탄쳉복(陳淸木)이 싱가포르의 변화를 희망한다며 지난해 창당한 신당이다. 그는 “싱가포르를 사랑하고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PSP에 모였다고 생각한다”고 입당 배경을 밝혔다. 현지 언론은 그의 출마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후보 등록 마감일인 6월 30일 그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리셴양의 발언 하나하나가 총선 이슈를 집어삼키자 리 총리는 6월 29일 “이번 총선은 가족 간 분쟁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미래에 대한 투표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리셴양은 다음 날인 30일 곧바로 페이스북 영상을 통해 반격했다.
“투표를 통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PAP의 시대를 종식시키자. 거대 정당이 된 PAP는 더 이상 국가의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하지 않는다. 정부 관료들은 내시병(비판 정신을 잃었다는 뜻)을 앓고 있다.”(30일 싱가포르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반전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PAP의 압승이 당연시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데르지트 싱 전 PAP 의원은 최근 “리셴양의 야당 입당으로 여당 고정 지지층인 유권자 60%의 일부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리콴유의 아들이 야당을 지지할 때 유권자들은 현재의 PAP가 과거의 PAP와 다를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설 국제부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