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그는 10년간 방송사와 신문사에서 웹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했다. 공간과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조직이 주는 일이 아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던 그는 주변 사람들 눈에는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동네 서점을 차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일은 쉽지 않았다. 주말에도 아내와 아이를 뒤로하고 서점에 나와 일을 해야 했다. 직장에서는 팀으로 일했지만 동네 서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다 해야 했다. 당연히 회사에서 벌던 것보다 수입은 안 좋았다. 결국 접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그는 실패한 실험을 한 것처럼 들린다. 과연 그럴까?
서점을 나와 전자책 회사에 들어갔다. 동네 서점 창업 및 운영 경험을 회사에서 높이 샀다. 전자책 분야 경험을 쌓고 다시 트렌드 콘텐츠 사업을 하는 회사로 옮겨 사업 전략을 맡고 있다. 그의 사례가 직장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열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 우리를 선택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 말은 열정에 대한 수동적 자세를 합리화하는 것처럼 잘못 해석할 수 있다.
열정이 나를 선택하기를 그저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 나를 발견하기 쉽게, 선택하기 좋도록 행동해야 한다. 나를 다양하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노출시켜 봐야 한다. 때론 ‘안정된’ 직장인의 처지로는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실험을 삶에서 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무엇에 열정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세 가지 다른 길을 간다.
둘째 유형은 열정을 찾기 위해 걱정은 많이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얼마 전 예방의학을 전공한 오랜 친구가 “매일 운동하지 않는 사람은 건강을 걱정할 자격이 없다”고 내게 따끔하게 말했는데 비슷한 경우다.
마지막 유형이 김 씨와 같은 사람이다. 이들은 기존에 자신이 머물러 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 작은 실험을 해본다. 부서나 회사, 업계를 옮기거나 창업을 하기도 한다. 서점 창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2년 동안 매달 안정된 수입을 가졌겠지만 콘텐츠 기획이라는 열정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걱정만 하면서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이했다면 그는 실험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실험을 하기에 30대가 가장 좋은 타이밍인데, 실험을 하다가 직장에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김 씨를 서점 창업 이전과 이후에 만났다. 직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이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큰 차이는 자기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지, 열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회사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또 다른 실험들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회사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마흔에 접어든 그는 앞으로 더 속도를 낼 것이다. 이제 자신이 어디로 뛰어야 할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