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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 활성화로 지역문제 해결해 ‘행정 사각지대’ 없앤다

입력 | 2020-07-03 03:00:00

[지방자치, 주민이 주인공이다]<上> 주민 중심의 주민 자치로




지난달 25일 서울 금천구 시흥3동주민센터를 찾은 주민들이 마을의 내년 주요 사업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시흥3동 주민자치회는 해마다 주민총회를 통해 사업을 결정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수가 모이는 행사를 열기 어려워 비대면 주민투표로 대신하기로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추진한다. 1988년 이후 32년 만이다. ‘주민조례발안법’ 등 2개 법안 제정과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등 3건의 개정도 추진한다. 지방행정의 객체로 머물러 있던 주민을 지역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기반 조성이 이번 제도 개선의 목적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 움직임의 의의와 과제를 3회에 걸쳐 다룬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3동주민센터.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1층 투표소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시흥3동 주민자치회가 내년에 시행할 사업을 결정하기 위해 3일까지 진행하는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어린이날 놀이기구 설치 운영을 위한 ‘제5회 박미어린이축제’ △유아용 여름 물놀이장을 여는 ‘제6회 박미워터파크’ 등 8개 사업이 후보에 부쳐졌다. 투표 결과에 따라 사업 예산을 조정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좀 더 원하는 사업에 힘이 실리게 되는 셈이다.

투표에 참여한 이은자 씨(58·여)는 “투표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 왔다”며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내가 참여해서 결정한다는 게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제 발굴부터 결정, 전 과정에 주민 참여
시흥3동 주민자치회는 2017년 12월 결성됐다. 그 전부터 주민자치위원회를 꾸려 활동하다가 정부의 시범 실시 움직임에 발맞춰 주민자치회로 전환했다. 결성 1년 만에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주민자치 분야 우수상을 받았다. 김명자 주민자치회장(68·여)은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주민이 주도하는 총회를 열기까지의 노력이 ‘풀뿌리 마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좋은 모델로 평가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주민자치회가 추진하는 사업은 대부분 주민의 생활과 아주 가까운 것들이다. 시흥3동의 경우 간단한 공구를 빌릴 수 있는 ‘뚝딱뚝딱 마을관리소’가 주민자치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체조 수업이나 시낭송회를 여는 ‘시니어힐링교실’도 있다.

주민들은 자치회 덕분에 얻은 것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예전에는 마을의 중요한 사업을 결정할 때 학연이나 지연 등을 고려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며 “지금은 의제 발굴, 공론화까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토론하며 우선순위를 정하므로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투표하는 과정도 더 많은 주민의 의견을 듣는 데 초점을 맞췄다.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시흥3동이 아니더라도 직장이나 학교가 이곳인 생활주민이라면 참여가 가능하다. 시장 골목이나 학교에 ‘찾아가는 투표소’ 설치는 기본이다. 심영보 부회장(68)은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따른 참여 저조를 막기 위해 QR코드를 활용하는 온라인 투표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법안 개정으로 자치회 활동에 ‘날개’ 달아야
당초 주민자치회는 주민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다른 나라보다 기초지자체의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에 주민들의 참여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 86개 시군구, 408개 읍면동에서 주민자치회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주민자치회를 시행하는 지역에서 응답자의 73%가 관심을 갖고 자치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78%는 자치회 덕분에 마을이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주민자치회의 활동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치흠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제도과장은 “주민들이 행정서비스의 수혜 대상에서 벗어나 직접 의제를 발굴함으로써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행정 사각지대를 줄이는 등 행정서비스 효율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 주민자치회는 아직 시범 실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민자치회 설치 근거를 담은 지방자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민자치회는 법정단체가 되고, 지자체가 주민자치회를 설치하고 지원을 하는 게 한결 수월해진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이재관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주민 참여가 필수 요소”라며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통로인 주민자치회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