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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칼럼]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입력 | 2020-07-03 03:00:00

민주주의는 휴머니즘 기반한 정치, 갈등 해소 약속 저버린 집권세력
‘자기결정권’ 잃으면 나라구실 못해… 인간애 바탕 정치근본으로 돌아가야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인류가 긴 역사를 통해 추구해온 과제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우리가 터득한 확실한 해답은 인간애에 뿌리를 둔 휴머니즘의 육성과 완성이다. 다른 모든 주의와 사상은 한 사회에 국한된 일시적인 이념으로 끝났으나 휴머니즘은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인간 전체를 위한 삶의 주체이면서 기반이 된다. 그 휴머니즘에 입각한 정치이념이 민주주의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필수조건으로 삼는 세 가지 정신적 가치가 자유 정의 진실이다.

이런 여건을 갖춘 국가와 사회는 휴머니즘의 강 주변에 자라는 수목과 같아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그 원천을 포기한 국가는 스스로의 불행과 종말을 초래했다. 도시국가인 아테네는 인류 역사에 유구한 정신적 혜택을 남겼으나 로마는 정신적 가치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물량적 유산을 남겼을 뿐이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스스로의 종말을 초래했고 독재국가들이 국민들의 불행을 가중시킨 사실들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지금은 다른 국가들이 대한민국과 북한을 비교하면서 역사의 교훈을 반성해 보는 실정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했는가. 3·1운동을 계기로 분출된 민족의식이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국가공동체의 주체로 굳건히 성장했다. 자유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세계 여러 국가와 유엔의 정신을 체감하면서 자유민주주의 대열에 참여했다. 그런 국민적 저력이 경제적으로는 절대빈곤의 한계를 넘어 세계 10대 경제국의 하나로 아시아의 모범을 과시할 정도가 되었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의 어떤 국민보다도 열성적인 교육의 성과가 그 추진력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한 북한과의 관계와 사상적 갈등이 회피할 수 없는 과제로 등장했다. 인류가 한 세기 동안 겪었던 냉전의 후유증을 떠안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김대중 정권까지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진보로 자처하는 좌파세력이 운동권 중심의 시민운동으로 정치무대를 차지하게 되었다. 운동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서먹하지 않을 정도로 정치세력의 한 축을 이루었다. 우리는 그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좌파 진보세력이 ‘앞으로의 대한민국을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이끌어 가는가’이다. 현 정권이 휴머니즘의 근본정신과 민주정치의 정도를 이탈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적 권리와 요청이다. 이는 진실 자유 정의의 건설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이다. 인류의 희망이며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병폐는 좌우의 이념적 갈등이 국민과 국론을 양분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은 수없이 그 분열과 갈등을 해소시킬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현실 정치는 그 방향을 역행하고 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정부와 국가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구한말의 쓰라린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자기결정권을 상실하게 되면 대내외적으로 나라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 불행한 현실이 이념과 정권욕의 이기적 집단행동이 되면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수단 방법만 잘 구사하면 이길 수 있고 그것이 곧 정의라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민주정치의 정도인 대화를 통해 ‘우리 모두를 위해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찾아 협력, 협조하는 상생의 길을 열어야 한다. 국민들은 정부에 묻고 싶다. 대화와 투쟁 중 지금까지 어느 방도를 택해 왔으며 앞으로 어디서 민주정치의 열매를 찾으려 하는가. 모든 공동체 의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은 집단이기주의를 위한 편 가르기다. 대한민국이 그 중병을 앓고 있다.

우리는 휴머니즘과 민주정치를 언급했다. 지금과 같은 인권문제에 관한 대북정책과 국제정치의 방향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북한 정권을 위해 우리 민족 전체의 인간다운 삶을 훼손하며, 세계 선진국의 비난과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홍콩과 자유 대만의 위상보다도 뒤지게 된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확실하다. 정당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념에 차이는 있어도 더 많은 국민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인간애에 뿌리를 둔 윤리관과 민주정치의 육성이라는 신념이다. 그 정신을 실천에 옮기는 선택과 노력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