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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는 사이코패스… 욕구불만 해소 14건 살인”

입력 | 2020-07-03 03:00:00

경찰, 화성연쇄살인 34년만에 종결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7)를 조사한 경찰은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시작했다가 가학적인 사이코패스형 범죄자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종합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지난해 8월 이춘재 수사에 착수한 지 11개월 만이다.

이춘재는 1989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모두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폭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살인죄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돼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춘재의 마지막 10차 범행은 2006년 4월 공소시효가 끝났다. 2007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었지만 이를 적용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

○ 프로파일러 52회 접견 조사, 자백 받아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미제수사팀은 지난해 8월 9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유류품에서 검출된 유전자(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이춘재는 처제 살인죄 무기수로 부산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다. 경찰은 곧바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았던 공은경 경위(40·여)와 9명의 베테랑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을 투입했다. 올 4월까지 모두 52회 접견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가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지난해 9월 24일 14건의 살인과 34건의 강간 범행을 자백했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가 면담 도중 화성사건 3, 4, 5, 7, 9차 사건에서 자신의 것과 일치하는 DNA가 확인된 사실을 제시하자 그동안 사실을 부인하던 이춘재는 태도를 바꿨다. 경찰이 출력해간 진술조서 A4용지 뒷면에는 범행 장소의 약도를 그려가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범행 동기는 “욕구 불만과 성적 표출”
경찰은 이춘재의 범행 동기에 대해 “욕구불만과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이춘재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존감이 약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자신이 모는 탱크를 다른 탱크들이 뒤따르는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과 우월감을 느꼈다고 한다. 반기수 수사본부장은 “평소 말이 없었지만 군대 시절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나서, 흥분된 상태였다”고 했다. 이춘재는 1986년 1월 전역 후 같은 해 9월 15일 화성시 안녕리에서 이모 씨(71·여)를 시작으로, 1991년 4월 3일까지 14건의 살인과 9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춘재는 살인을 거듭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범행 수법도 가학적으로 진화했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경찰이 이춘재의 사이코패스 심각도 검사를 한 결과 상위 65∼85%로 나왔다.

○ 경찰 “과거 강압 부실수사 사과”
경찰은 이날 이춘재 범죄와 관련된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와 경찰 등 9명을 함께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당시 수사 경찰관이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 씨(53)를 지목해 구속영장 발부 없이 3일간 부당하게 구금하고 폭행과 가혹행위 등을 한 것을 밝혀냈다. 2009년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윤 씨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현재 재심을 청구해 진행 중이다.

1989년 7월 7일 초등학생 실종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도 경찰이 실종된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했으나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은닉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봤다. 경찰은 또 이춘재를 화성 6차 사건 이후인 1986년 8월 발생한 초등생 강간사건과 1988년 9월 화성 8차 사건, 1989년 7월 발생한 초등생 실종사건 등 3건의 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가 없다’ ‘현장 음모와 혈액형 및 형태적 소견이 상이하다’ ‘족장(255mm)과 이춘재의 족장(265mm)이 불일치한다’는 등의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제외해 부실 수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청장은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씨와 가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춘재와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들은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은 받지 않는다. 이춘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소송 역시 소멸시효 문제로 쉽지 않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