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호주에서는 매년 10월 31일까지 소득을 신고한다. 나는 세무 회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1999년 말부터 2004년 초까지 호주에서 사는 동안 매년 소득 신고를 하려 했지만 종종 기한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모든 수입과 소비에 대한 기록, 즉 영수증이나 급여 명세서를 보관하고 두꺼운 소득신고서 소책자를 손으로 작성한 뒤에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물론 지난 16년 동안 호주의 세금 신고는 보다 간편해졌겠지만 내가 호주에 사는 5년 동안 세금에 관해서라면 관련 서류를 산더미처럼 계속 쌓아 놓고 살았던 기억만 남아있다.
한국에 와서도 소득 신고의 스트레스가 여전했다. 홈택스 웹사이트는 구성이 꽤 잘된 플랫폼이지만 회계사가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는 활용하지 않을 법한 세무 용어로 가득했다. 팝업창과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메뉴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처리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 지난해까지 다니던 법률사무소의 공인회계사와 재무부서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혼자서 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한 뒤 주소, 성별, 외국인등록번호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하고 나서 결국에는 구원을 요청해야만 했다.
동료 공인회계사는 내 컴퓨터로 와서 홈택스의 몇 군데를 클릭하기만 하면 지난 한 해 수입 자료가 자동으로 뜨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입이 떡 벌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부가 어떻게 내가 어디서 얼마를 벌었는지 알지?’ 신용카드 사용 금액, 대중교통 요금, 건강보험 정보를 불러오는 방법도 보여줬다. 내가 직접 작성할 것이 사실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국세청이 미리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내가 왜 신고를 해야 하지? 정부가 다 계산하고 청구서를 보내면 되잖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는 직장을 옮긴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를 하느라 소득 신고 기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번 주에야 드디어 여유를 찾아 소득 신고를 마치리라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지난해 배운 홈택스 신고 절차를 다 잊어버렸고 결국 새 직장 실장님께 다시 한번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또 한번 배웠고, 또다시 감탄했다.
회사 일로 세무서에 가본 적은 있었지만 개인적인 일로 세무서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손 소독제를 바르고 한 공무원의 책상 앞에 앉았다. 담당자는 내 신분증으로 모든 항목을 살필 수 있었고 금세 오류를 파악했다. 키보드를 누른 지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고 버튼을 클릭하기 직전에 “또 다른 공제 건은 없느냐”고 물었다. 7월 1일까지 신고하지 않으면 가산세가 더 부과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신고를 마무리하며 결국 가산세가 포함된 납부 청구서를 받아들고 사무실에 와서 스마트폰 뱅킹을 통해 금액을 송금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편하고 쉬웠다.
이제는 세무서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제시간에 소득세를 신고했더라면 가산세를 아낄 수 있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내년에는 친구인 세무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보려고 한다. 아, 물론 상담비와 신고 대행비는 낼 것이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