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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려면 하세요” 최숙현 선수 지키지 못한 ‘무관심’

입력 | 2020-07-03 16:59:00

2일 오후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 직장 운동부 감독인 A씨가 인사위원회가 열리는 시 체육회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A씨는 지난달 26일 부산에서 숨진 고 최숙현 선수의 전 소속팀 감독으로 최 선수 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 News1


가는 곳마다 서로 다른 기관의 조사를 기다려야한다고 말하는 동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결론 없이 증빙서류 제출 등 매번 똑같은 절차만 되풀이됐다. 철인3종 국가대표였던 고 최숙현 선수가 여러 기관들을 찾아다닌 과정은 국내 인권 관련 시스템의 취약한 구조를 보여준다.

소속팀 감독과 동료들로부터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최 선수 가족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전 소속팀 경주시청이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2월 6일 경주시청을 찾아 딸의 상황을 설명하며 조치를 취해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경주시청 팀이 1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이어서 핵심 가해자로 지목된 감독과 현 소속선수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경주시청 측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월 중순 예정이었던 귀국이 3월 말로 늦어졌다. 14일간 자가 격리 기간을 거쳤을 때는 이미 경찰 조사가 시작돼 결과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최 씨는 “관계자로부터 2000만~3000만 원 들여서 훈련 갔는데 다 불러들일 수 있나요? 고소하시려면 하세요”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경주시청 관련자들은 이에 대해 “누가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최 선수 측은 3월 5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폭행 등의 혐의로 팀 관계자 등을 고소했다. 경주지청은 3월 9일 이를 다시 경주경찰서로 내려 보냈다. 이 과정에서 한 조사관이 “이런 거는 벌금 몇 십 만 원짜리 밖에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해 최 씨와 딸은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경주경찰서 측은 3일 이 발언의 진위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최 선수는 4월 8일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도 신고했으나 이미 경찰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결과 자료를 받아 피해 내용을 파악한다는 답을 들었다. 대한체육회 측은 “당사자들이 코로나19 피해가 심했던 대구, 경북에 있어 직접 부르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최 선수 측은 지난달 22일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협회 관계자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조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이미 조사를 하고 있던 클린스포츠센터에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3일 서울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최숙현 의원 진상규명 간담회에 따르면 협회는 이미 올해 2월에 최 선수 관련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협회는 경주시청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지만 “문제가 없다”는 감독의 말을 믿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 이양수 의원은 “협회가 그 때 발 빠르게 대처했다면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어느 곳에서도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던 최 선수는 생을 마감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넣었다. 하지만 절차에 따라 새로운 조사관들의 조사 및 관련 내용 심의 등을 기다려야했다.

최 선수가 찾아간 곳은 많았지만 진심과 열의를 갖고 귀 기울여 준 곳은 거의 없었다. 내용을 통합해 일관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도 부족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3일 “팀 감독을 직무정지시키고 폭행 당사자인 팀 닥터도 고발하겠다. 팀 해체를 비롯한 강력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같은 날 한국체대 핸드볼팀에서도 선수간 폭행 사건이 불거졌다. 지난달 15~17일 강원 춘천의 한 연수원으로 떠난 MT에서 3학년생 A를 동급생들이 뺨을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집단 괴롭힘을 가했다. A는 연수원을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받은 춘천경찰서가 관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는 “자체 진상 파악 중이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개최해 징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원홍전문기자 bluesky@donga.com
대구=명민준기자 mmj8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