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폭스캐처
이정향 영화감독
데이브와 마크 슐츠 형제는 둘 다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다. 형은 마크를 끔찍이 아끼지만 마크는 줄곧 형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 변변한 수입도 없다. 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갑부 존 듀폰이 두 형제에게 영입 제안을 한다. 형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 거절하지만 마크는 자신을 알아준 존과 그의 재력에 끌려 펜실베이니아로 떠난다.
존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형과는 점점 거리를 두는 마크는 형의 지도 없이 연습할수록 방향을 잃고 자신을 돈으로 지배하려는 존에게 실망과 환멸을 느껴 삐뚤어진다. 동생이 걱정된 형은 존의 제안대로 폭스캐처 팀의 코치로 합류하지만 몇 년 뒤, 존에게 살해당한다.
모든 문제아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을 탓할 뿐, 부모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미움받아 마땅한 자식이 되려고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부모 때문에 생긴 분노는 내면에 쟁여지다가 무고한 제3자를 향해 폭발한다.
만약 존 듀폰에게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더 이상 기대하지 말고 그 사랑을 너 스스로에게 주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사랑받지 못한 건 아이가 아닌 엄마의 잘못이었다는 아픈 진실을 깨달았다면, 존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진 이가 돈과 권력을 쥐면 부모에 대한 분풀이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해댈 수 있다. 핵폭탄이 따로 없다. 지구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