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동성 과잉 몸살
#2.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쌓여 온 통화량으로 각국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프랑스 매체 ‘로컬프랑스’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파리 집값은 62.5% 올랐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올 초까지 독일 베를린 집값은 3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39% 상승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세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때처럼 또다시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하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는 헬기에서 돈을 뿌리듯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직접 돈을 찍어내 대량 살포하는 돈을 뜻한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 푼 돈도 대부분 회수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또 돈이 풀리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실물경제는 냉골인데 시중에 넘쳐흐르는 돈 때문에 자산 가격만 솟구치는 것이다.
○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또 현금 살포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경제위기 국면에서 천문학적인 유동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약 4조 달러에 육박하는 유동성을 공급한 미국 중앙은행은 올해만 1조 달러에 이르는 돈을 시중에 풀고 있다. 일본은행도 올해 들어 두 차례에 걸쳐 230조 엔(약 2560조 원)의 슈퍼 경제대책을 마련했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약 40%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은 5, 6월 최소 2조6750억 위안(약 450조4000억 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2월 이후 런민은행이 푼 돈은 10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전문가들은 미국, 유로존, 일본, 영국 등 G4 중앙은행이 올해 들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한 유동성 규모가 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00달러짜리 지폐로 6조 달러를 쌓으면 높이가 7200km로 에베레스트 산(8848m)의 814배에 이른다.
○ 실물경제는 냉골인데 자산시장만 활황
문제는 넘쳐나는 돈이 증시,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면서 거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 미국 증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5만 명 이상 증가하는 초비상 국면에서도 상승세다. 올해 2분기 다우존스지수는 17.8% 상승하며 1987년 1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S&P500지수도 20%나 상승하며 1998년 이래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심지어 같은 기간 나스닥은 ‘천슬라’(1000달러와 테슬라의 합성어) 돌풍 속에 30.6% 급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기업 실적은 고꾸라졌지만 개미들의 자금이 몰리면서 올 들어 2일까지 국내 주식시장 누적 거래대금이 2293조6000억 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연간 거래대금(2287조6000억 원)을 6개월 만에 넘어선 것이다.
각국 부동산 시장도 뜨겁다. 현 정부 들어 약 3년 동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KB국민은행 통계)은 51% 올랐다. 일본 부동산 가격 역시 풍부한 유동성 공급에 힘입어 상승세다. 일본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 주택가격지수(기준점인 2000년 1월=100)는 2013년 1월 77.07에서 올해 3월 93.6으로 6년 연속 올랐다. 코로나19의 와중에도 4월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27개 대도시 신규 아파트 거래 건수는 3월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 현금으로 만든 뗏목 위에 탄 세계 경제
시장에선 ‘유동성 폭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자산시장에 버블이 낀 상황에서 유동성 확대가 중단되고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금융권 부실 등 2차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금융안정보고서(GFSR)에서 현재 진행 중인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괴리 현상이 자산 가치의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각국이 유동성을 회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해온 까닭에 기업 부채는 이미 위험 수위다. 중국만 해도 기업부채 규모가 2008년 4조 달러에서 올해는 20조 달러로 늘었다. 작은 충격에도 채무불이행 위험에 내몰릴 수 있을 만큼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태인 것이다. 한국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좀비 기업’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금리를 올리고, 보유 자산을 축소해 보려고 했는데 결국 코로나로 다 틀어졌다”며 유동성 회수가 난제라고 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신나리 기자 / 파리=김윤종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