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연준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1930년대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믿는 그는 “대공황을 다시 맞으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된다”는 말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재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크본드까지 사들이는 더 과감한 조치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있다.
▷연준과 트럼프 행정부가 2인 3각으로 돈을 풀면서 미국 증시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분기에 일본 도요타의 4%인 10만3000대의 차만 생산하고도 나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실제 굴러가는 차를 아직 한 대도 만들지 못한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시총은 현대차를 넘어섰다. 전통적 분석 방법으로 설명의 한계에 부딪힌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꿈 비율(PDR·price to dream ratio)’ 같은 신조어까지 동원하고 있다. 분명한 건 ‘꿈’의 상당 부분은 헬리콥터 머니 영향이란 점이다.
▷지난달 30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값이 8년 9개월 만에 온스(약 31.1g)당 1800달러를 돌파했다. 달러화 가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금값은 급등한다. 최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등으로 조만간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35% 절하될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후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돈 풀기 후유증을 더 걱정해야 할 한국에서 부작용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