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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들 “기획부터 출판까지 나혼자 다~ 한다”

입력 | 2020-07-07 03:00:00

대형 출판사서 독립하는 작가들
김영하 김민섭 이슬아 작가 등 개인 출판사 차리고 작품 활동
“과감한 시도 할 수 있어 장점… 마케팅-교정은 외주와 협업”
출판계와 미묘한 긴장 관계도




작가 이슬아 씨가 차린 출판사 ‘헤엄’이 ‘일간 이슬아’의 글을 엮어 출간한 저서들. 이 씨는 “기성 출판사에선 꺼리는 표지 디자인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헤엄’ 홈페이지

대형 소속사를 나와 1인 연예기획사를 차리는 연예인처럼 작가가 직접 차린 출판사가 늘고 있다. 지명도가 있는 작가가 ‘팬덤’을 기반으로 기획 편집 디자인 등을 하고 싶은 대로 해보는 일종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올 4월 아내인 장은수 씨가 대표인 출판사 ‘복복서가’를 통해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 여행기 겸 에세이집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출간했다. 복복서가는 대형 단행본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합자해 세운 출판사로 작가는 기획자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상 작가가 기획하는 독립출판사인 셈이다. 책의 기획, 편집은 작가의 취향에 맞춰 제작되고 전문가 손길이 필요한 마케팅, 디자인, 유통은 문학동네에서 협업하는 구조다. 복복서가는 작가 부부가 선정한 해외 작가들의 책도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 ‘대리사회’ 같은 사회 고발성 저서로 이름이 알려진 김민섭 씨는 1인 출판사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대 시간강사로 지내다 생계를 위해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 씨는 시간강사 처우의 부조리함을 담은 ‘지방시’를 낸 뒤 대학을 떠나야 했다. 이후 대리운전을 하며 ‘대리사회’를 펴낸 뒤 정미소를 만들었다.

김 씨가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첫 책을 내고 인생이 바뀌었던 것처럼 ‘젊은 작가의 첫 책을 응원한다’는 모토를 가진 정미소의 행보는 좀 더 실험적이다. 김 씨는 “소수자가 가진 힘은 폭로, 고발에서 나온다. 소수자의 담담한 삶의 기록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콘셉트가 확실하다 보니 투고도 많이 온다”고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입시 현실에 처한 고3 학생이 답답한 수험생의 삶을 쓴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라는 책을 냈다.

에세이 정기구독 서비스 ‘일간 이슬아’로 이름을 알린 이슬아 씨는 출판사 ‘헤엄’을 운영한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심신 단련’ ‘깨끗한 존경’ 등 일간 이슬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에세이, 산문 등을 다시 손봐서 책으로 엮었다. 일간 이슬아 구독자들이 책도 사는 경우가 많다. 글을 모니터로 보는 게 아니라 종이로 소장하고 싶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마니아층이 두 가지 버전으로 글을 소비하는 셈이다.

왼쪽부터 김영하 김민섭 이슬아 씨. 동아일보DB

이 같은 출판사는 작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힌다. 이 씨는 “기성 출판사와 일할 땐 제목, 디자인 등 당대 인기 저서의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다”며 “기존 출판사에선 통과되지 못할 아이디어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인쇄 방법, 종이 골라 발주 넣기 등 저술 이외 책 내는 데 필요한 모든 과정을 새로 배우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다행히 교정, 표지 디자인, 마케팅, 유통 등은 외주가 가능한 상태여서 이 씨 같은 독립출판사는 외주를 준다.

기존 출판계와의 묘한 긴장 관계도 있다. 김민섭 씨는 “처음 출판사를 차린다고 할 때 ‘인세 10% 받는 게 부족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작가 출판사’에 대해 “온라인화로 책 유통에 대한 부담이 줄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달로 홍보 같은 출판사 역할이 줄어들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작가의 문학적 역량이 다른 곳에 소모되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출판사들이 작가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